1860년대 서아프리카 ‘칼라바르’에서 활동하던 영국 선교사들은 현지인의 아주 이상한 재판을 목격한다. 죄인이 심판정에 끌려 나오면 유무죄를 재판관이 가리지 않고 특정 식물을 으깬 즙을 먹인 후 기다렸다. 얼마 후 죄인이 죽으면 유죄, 살면 무죄로 결정했다. 이런 황당한 재판이 어디 있을까 싶었겠지만 선교사들은 뭔가 현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이 식물을 구해 본국으로 보냈다.
영국의 식물학자들은 ‘칼라바르 콩’을 길렀고 마침내 약효를 내는 성분도 추출했다. 그 성분은 ‘피조스티그민’이라 불렸는데 식물의 학명을 딴 이름이다. 약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소량 흡수 때는 몸이 저린 정도에 그치지만 다량 흡수되면 호흡이나 심장 마비로 목숨을 잃는 유독 성분이었다. 하지만 소량을 눈에 떨어트리면 동공을 수축시키는 효과가 있어 안과 의사들은 녹내장 치료제로 쓰기 시작했다.
피조스티그민은 몸속에 들어오면 체내 아세틸콜린의 작용에 영향을 준다. 신경 전달 물질의 대표선수이자 ‘신경계의 마당발’인 아세틸콜린은 주로 부교감신경계의 기능(심장·호흡·소화·분비 등에 관여)을 강하게 하고, 팔다리 근육과 신경 사이를 오가는 운동 신호를 전달하며, 뇌에서는 학습이나 기억 같은 인지 기능을 매개한다. 아세틸콜린의 효과를 차단하면 당장 변비, 소화불량, 입 마름은 물론이고 정신착란까지 생기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심장을 두고 보면 교감신경에서 내뿜는 아드레날린은 심장에서 가속페달로, 부교감신경에서 내뿜는 아세틸콜린은 심장의 감속페달로 작용한다.
아세틸콜린은 1914년에 맥각(麥角)이라는 보리 곰팡이에서 처음 분리됐고 체내에서는 그보다 늦게 미주신경에서 분비되는 것으로 확인했다. 흥미롭게도 아세틸콜린을 분리할 때 피조스티그민을 썼다. 신경이 아세틸콜린을 분비하면 아주 짧게 작용하고 바로 사라진다.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어 신속히 제거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조스티그민을 써 보니 이 효소의 활동을 방해해 아세틸콜린이 오래 머물면서 작용할 수 있었다. 피조스티그민이 아세틸콜린에 직접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 아세틸콜린의 효과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 원리를 이용해 피조스티그민은 1930년대에 중증근육무력증 치료제로 쓰인다(지금도 쓰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그 성질을 이용해 유기 인 성분의 살충제, 신경가스 같은 화학무기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20세기 말에는 치매 치료제로도 만들어졌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은 물론이고 지금도 신경과 의사들이 열심히 처방한 치매 치료제는 우리 뇌의 신경세포들의 연결부(시냅스)에서 아세틸콜린의 재활용도를 높여 효과를 증강시키는 약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칼라바르 콩의 후손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치매 환자의 뇌에 아세틸콜린 농도를 높이면 인지 기능이 나아질 것이란 생각으로 개발된 약도 나왔다. ‘콜린 제제’다. 콜린이 몸속에 들어오면 아세틸콜린으로 바뀌므로 뇌 속 아세틸콜린 농도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마땅한 치료제가 없던 치매나 뇌 질환 환자에게 도움도 될 것 같아 널리 처방됐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뇌 영양제’ 혹은 ‘치매 예방약’으로 잘못 알려져 오남용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는 건강 기능 보조식품으로 분류된 이 약을 의료보험 재정을 써가며 처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마침내 정부는 약효 재평가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2025년 가을부터 치매 환자라면 종전처럼 의료보험 혜택(본인 부담 30%)을 받지만 그 외에는 약값 대부분을 본인이 부담하게 됐다. 그동안 저렴하게 약을 먹어온 환자들은 갑자기 약값이 올라 현장에서는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뇌 영양제를 어찌할까. 신경과 의사들의 주된 입장은 치매 환자라면 모를까 경미한 인지 저하증이 라면 이 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굳이 콜린을 많이 먹을 이유도 없다. 치매가 예방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콜린 제제 처방받을 곳을 찾아다니는 콜린 난민 신세를 벗어나도 된다.
그래도 오랫동안 먹던 약인데 갑자기 끊어 서운하다고? 대안이 전혀 없지는 않다. 콜린을 약이 아닌 음식으로 많이 먹으면 된다. 붉은 고기, 가금류, 유제품, 생선, 채소, 콩, 견과류에 풍부하다. 채식이 풍부한 우리 식단에 단백질과 견과류를 더하면 끝이다. 무엇이든 골고루 먹기만 해도 몸은 물론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 먹고 머리가 좋아지는 그런 환상적인 약물은 없다는 것만 기억하자.
참, 칼라바르 콩은 족집게처럼 범인을 잡아냈단다. 어떻게? 죄가 없는 사람은 무죄 입증을 위해 약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그러면 십중팔구 다 토하게 돼 있다. 하지만 죄가 있는 사람은 죽는 것이 두려워 찔끔찔끔 마셨고 약이 조금씩 흡수돼 결국 죽어버렸다. 이 황당한(?) 재판에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보편 진리가 숨어 있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이지는 못한다’는 것. 참 신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