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혼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소문이 무서워 쉬쉬하던 부부 관계를 스튜디오 조명 아래에서 상담과 토론의 형태로 공개한다. 유독 눈에 띄는 변화는 결혼 20~30년 이상 된 황혼부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방송 소재의 확장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실제로 지난해 ‘황혼 이혼’이 1990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신혼 이혼’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6일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보면 지난해 혼인 기간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 건수는 1만5628건으로, 혼인 기간 5년 미만 부부의 이혼 건수 1만4392건보다 1236건 많았다.
황혼 이혼 증가는 사회통념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거나 “다 늙어 이혼해서 무엇 하느냐”는 말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노년 여성층의 인식 역시 자녀나 주변의 시선보다 남은 삶의 만족과 자기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외벌이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면서 황혼 이혼 증가의 연령대인 1970년대생을 중심으로 고학력·경제력을 갖춘 여성들이 늘었다. 남성들 역시 가사와 독립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이혼 이후 생활 부담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령화로 결혼 지속 기간이 길어지면서 갈등이 축적되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 젊은 시절 미뤄둔 갈등은 노년기에 다시 표면화되는 사례가 많다. 경제력을 갖춘 배우자와 가부장적 사고가 충돌하는 사례도 그 가운데 하나다. 결국 각자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오랜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내를 넘어 관계를 지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적 역할 분담뿐만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집값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요즘 황혼 이혼 증가를 두고 ‘부동산 변수’를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재산 분할 과정에서 집값 상승이 일종의 안전판이 되면서 이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낮춘다는 것이다. 집값이 오를 때 황혼 이혼이 늘고, 시장이 얼어붙으면 잠잠해지는 흐름이 있었다는 통계가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탠다.
황혼 이혼은 이제 개인의 선택을 넘어 하나의 사회 풍조가 됐다. 고령화 시대, ‘덜 외롭게 사는 삶’은 점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은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