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을 앞두고 야권 후보가 김영삼과 김대중으로 갈렸다. 김영삼 후보가 속한 통일민주당의 박찬종 의원은 국민 열망을 담아 양김 단일화를 요구하며 머리를 깎았다. 그러나 그의 삭발 투혼은 후보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정권교체는 실패했다. 이후 삭발은 한국 정치무대에서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단식과 함께 심심찮게 등장했다. 2004년엔 설훈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에 앞장선 당 지도부에 반발해, 2019년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를 촉구하며 삭발했다.
종종 있는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흔하지는 않았던 정치인의 삭발이 이번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에서 세 번이나 이어져 눈길을 끈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스타트를 끊었다. 박 후보는 지난 3월 국회 계류 중이던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삭발했다. 부산에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특례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골자인 이 법안은 엑스포 유치 실패 후 부산 민심 달래기용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때 추진됐다가 정권이 바뀌며 사실상 중단 상태다. 다음 바통은 정승윤 부산시교육감 후보가 받았다. 정 후보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 재조사 결과에 반발해 머리를 깎았다. 지난 8일 권익위는 2024년 권익위 부위원장이던 정 후보가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신고자 측인 윤 전 대통령과 만나는 등 부적절하게 개입했다고 보고 국가수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위반사항 없음’ 결론을 내려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 후보는 “정치 탄압이자 선거 개입”이라며 삭발했다.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민식 국힘 후보도 지난 21일 머리를 깎았다. 무소속 한동훈 후보를 “잔인한 배신자”라 지칭하며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자 삭발했는데, 90대 노모가 직접 박 후보의 머리카락을 잘라 화제가 됐다. 구포 월남댁의 아들로서 ‘찐북구’를 강조,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고육책으로 풀이됐다.
삭발은 극단적 의견표출 방식이다. 배수진을 치고 불리한 전황을 정면돌파하려는 강력한 투쟁의 의지라 할 수 있다. 투사가 되어 강자에 맞서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냥 삭발’이라는 자극적인 이미지만 남게 될 뿐이라는 점도 이들이 고려했는지 궁금하다.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