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잠수함의 시초는 1775년 미국 발명가 데이비드 부쉬넬이 만든 ‘터틀(Turtle)’이다. 미국 독립전쟁(1755~1783년) 시기 대영제국 함대를 물리칠 방법을 고민하던 부쉬넬은 포도주 술통처럼 생긴 1인용 잠수함을 제작했다. 원리는 단순했다. 밑바닥에 달린 손잡이로 물을 채우거나 빼면 잠수함이 뜨거나 가라앉았다. 터틀은 뉴욕항에서 발각돼 최후를 맞기까지 영국군의 1호 경계대상이었다.
1900년대 잠수함은 디젤 엔진을 장착한 첨단 살상무기로 진화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을 괴롭힌 독일 유보트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디젤 대신 원자력을 사용하는 세계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노틸러스’를 개발한다. 1958년 8월 3일 노틸러스호는 해저 152m까지 잠수해 역사상 처음으로 북극해의 두꺼운 얼음 아래를 통과했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 주인공 네모 선장이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이끌고 심해를 누비던 꿈이 현실에서 이뤄진 것이다. 수면이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해 잠항은 주기적으로 수면 가까이 떠올라 산소를 공급(스노클링) 받아야 하는 디젤 잠수함으론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핵잠수함은 원자로에서 얻은 전기로 터빈을 돌리기 때문에 스노클링이 필요 없다.
정부가 2030년대 중반까지 첫 핵잠수함을 진수한다는 목표를 담은 ‘장보고 N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그동안 핵잠수함 개발이 더뎠던 이유는 핵 비확산 원칙을 내세운 미국의 반대 때문이다. 지난해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의 핵연료 공급 요청에 전격 동의하면서 큰 걸림돌이 제거됐다.
정부 계획대로 지금부터 핵잠수함 제작에 돌입해도 최소 10년은 걸린다. 한미 정권이 교체돼도 흔들림 없이 추진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가장 중요하다. 핵잠수함을 어디서 건조할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트럼프는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건조 장소로 내세웠다. 핵잠수함 건조에 앞서 분명히 정리해야 할 대목이다.
사실 미국의 노틸러스 개발에는 핵 잠수함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먼 리코버(1900~1986) 제독의 결정적인 공헌이 있었다. 그는 평생을 관료주의와 싸우면서 한편으론 민간 기업의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미국 정부도 리코버가 1949년부터 1982년까지 32년간 핵잠수함 개발을 총괄하도록 배려했다. 리코버 같은 인재를 키워야 ‘한국판 노틸러스’의 꿈이 속도를 낼 수 있다.
이노성 미래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