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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어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범어사 성보박물관 제공 |
얼마 전 필자는 범어사 성보박물관을 찾았다. 주말의 박물관에는 외국인 관람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기획전과 미디어아트 전시를 둘러보던 중 높이 3.5m, 너비 4m에 이르는 대형 불화 ‘영산회상도’(1882)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산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불화는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수많은 보살과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의 제목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한 음악이 떠올랐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악 레퍼토리인 영산회상이다.
조선은 건국 이후 숭유억불 정책을 펼치며 불교 세력을 억제했다. 사찰은 산중으로 옮겨졌고 승려들의 사회적 활동도 크게 제한되었다. 그러나 불교문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깊은 산사에서 불화와 건축, 범패와 영산재 같은 예술과 의례를 발전시키며 명맥을 이어왔다. 그 가운데 영산회상은 특히 흥미로운 역사를 지닌 음악이다. 오늘날에는 조선시대 풍류 음악을 대표하는 정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은 불교음악에 있었다.
조선 초기 영산회상은 본래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일곱 글자의 불교 가사를 노래하던 성악곡이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가사는 사라지고 기악곡으로 변화했고, 여기에 여러 변주곡이 더해지면서 오늘날의 현악영산회상이 완성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불교에서 비롯된 음악은 종교적 성격이 점차 옅어지고 사대부들의 사랑방과 궁중에 널리 향유되며 조선을 대표하는 풍류 기악곡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영산회상은 거문고와 가야금이 중심이 되는 섬세한 ‘현악영산회상’을 비롯하여 향피리와 대금이 이끄는 장중한 ‘관악영산회상’, 그리고 ‘평조회상’으로 다채롭게 파생되었다. 하나의 성악곡이 수백 년 동안 편성과 연주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 온 역사는 우리 전통음악이 가진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영산회상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산재와 범패를 만나게 된다. 영산재는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장면을 재연하는 불교의식이다. 음악과 춤, 의식 행렬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영산재의 중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성악 장르 가운데 하나인 범패가 있다. 긴 호흡으로 한 음을 끌어내는 장중한 선율은 한국 불교음악만의 독특한 미학을 보여준다. 범패는 홋소리와 짓소리, 화청으로 나뉜다. 특히 화청은 우리말 가사를 사용해 만든 노래로, 삶의 교훈과 위로를 전하며 대중과 소통하고자 했다. 흔히 시끄럽고 어수선한 상태를 뜻하는 ‘야단법석’ 역시 본래는 야외에 단을 세우고 설법과 음악을 나누던 축제 같은 법회에서 유래한 말이다. 산사에 머물던 불교음악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지혜로운 방식이었던 것이다. 영산회상 역시 영취산의 설법을 찬탄하던 성악곡에서 출발해 조선 선비들의 풍류음악으로 변모했고, 오늘날에도 교육 현장, 음반, 다양한 무대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숭유억불의 시대에 불교에서 비롯된 음악이 조선을 대표하는 풍류음악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산회상은 단순한 정악의 명곡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를 변주하며 이어온 한국 음악문화의 지혜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