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박스오피스 최대 흥행작은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였다. 관객 1688만 명을 불러 모으며 ‘극한직업’(2019년 1626만 명)을 제치고 ‘명량’(2014년 1761만 명)에 이어 역대 관객 수 2위에 올랐다. 관객 수로는 2위이지만 매출액은 역대 1위다. 누적 매출액이 1630억 원으로 명량(1357억 원)과 극한직업(1396억 원)을 모두 누르며 한국 영화사에 새 기록을 작성했다.
왕사남은 조선 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뺏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쫓겨간 뒤 그곳에서 마을사람과 어울리며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실제 역사를 다룬다. 단종은 계유정난 2년 뒤 상왕으로 물러나고 이후 전개된 복위 운동도 실패로 돌아가면서 ‘노산군’으로 강등돼 유배지에서 17살 짧은 생을 마감한다. 숙종에 의해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복위되기까지 무려 241년이 걸린다. 이런 그의 비극적 삶을 담은 영화에 공감한 관객은 유배지 영월을 찾아 여운을 되새긴다. 영월군 공식 집계에 따르면 청령포와 장릉(단종의 능)을 찾은 올해 누적 관광객 수가 지난달 기준 52만 명을 넘어 작년 한 해 관광객 수(26만 명)의 2배를 벌써 달성했다. 영화에서 단종을 열연한 배우 박지훈의 새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왕사남 후광에 흥행가도를 달린다. 전생에 ‘밥상을 받던 왕’이 ‘밥상을 차리는 취사병’으로 새로 태어난 거냐며 흥미롭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단종을 두고 이어지는 감동은 최근 엉뚱한 데서 깨졌다.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노산군에서 복위된 단종처럼 거짓과 모함으로 덧씌워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멍에는 반드시 벗겨지고 제자리로 복위될 것”이라고 썼다. 박 전 대통령이 부산 등 전국을 돌며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국힘 후보를 지원 유세한 가운데 최측근이 단종 복위를 언급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지난달 31일 부산을 찾아 국힘 후보에 표를 줄 것을 호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돼 징역 22년형을, 이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횡령 등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특별사면됐다지만 단죄돼 헌정사에 오점을 남긴 두 전직 대통령이 자숙은커녕 정치무대에 재등장해 눈총을 받는다. 부당한 무리에 강탈당한 단종의 가여운 인생사를 심지어 복위 운운하며 아전인수하려는 ‘기적의 논리’에 공감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국민의 요구는 그저 모독을, 감동파괴를 멈춰달라는 거다.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