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교육에는 등록금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든다. 동아대 의과대학의 경우 학생의 등록금 수입은 해부학, 생리학 등을 가르치는 기초의학 교수와 소수의 행정지원 인력의 인건비를 충당하는 정도다. 교육시설과 기자재, 임상의학을 가르치는 교수 인건비 등은 대학본부의 재원과 부속병원 수익에서 충당한다. 다른 의과대학의 사정도 비슷하다. 의사들이 근무 시간의 거의 전부를 환자 진료에 사용하지만, 교육과 연구 등 의과대학 관련 업무는 진료 수익을 활용해서 무료로 봉사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대학병원은 의과대학이 없는 종합병원과 비교 시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좁게 보면 대학병원의 교직원이 낮은 수입을 감수하는 것이고, 넓게 보면 대학병원이 소재한 지역의 잠재적 환자에 돌아가는 혜택의 일부를 교육을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사를 양성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투자라고 여기고 기회비용을 감수한다.
지난번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토론회에서 전격 발표된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은 오랜 기간 대학병원 진료와 의학교육의 파행으로 이어졌다. 결국 원래의 증원 계획은 철회되었고, 대신 500명 정도의 지역의사제 정원을 추가 선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지역의사는 소위 의료취약지에서 10년간 의무복무를 하도록 정해서, 기성 의사는 경쟁 상대가 늘어나는 것을 제한하는 실리를, 정부는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완화한다는 명분을 지켰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의무복무 기간 10년이 지나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의사면허를 가질 수 있다면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할 듯하다. 지난 5월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입학정보포털에 지역의사선발전형에 대한 안내문이 등록되었고, 대학별 선발 계획이 확정되고 있다. 지역의사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진료권에서 의무복무해야 하고, 전공의 수련도 원칙적으로는 의무복무지역에서 받아야 하는데, 의무복무지역에 광역시는 대체로 빠져 있다. 그러니까 부산 대구 광주에 있는 의과대학에서 교육은 받지만, 전공의 수련이나 근무는 경남 경북 전남에서 해야만 하는 구조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주체가 이후에 그 효과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구조로 양성된 지역의사가 의료 위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최근 조산 증세를 보이는 산모가 적합한 병원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잇따랐다. 2000명 증원 사태가 벌어지던 시기에는 중증 외상환자의 미수용과 장거리 이송이 주요 관심사였다. 중증외상, 급성대동맥질환, 고위험 산모, 미숙아 집중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의사는 대도시에서도 부족하다. 중증 의료의 많은 분야에서 현직 의사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대가 끊어질 것을 걱정한다. 단순히 전문의 자격증을 가졌다고 중증 질환을 진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의가 된 이후에도 중증 환자를 진료하면서 추가적인 경험과 노력을 쌓아야 한다. 고난도 중증 진료에 대한 수련과 후진 양성 환경은 그나마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데, 지역의사제의 진료권 제한은 이런 고난도 진료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결국 지역의사제는 실제로 부족한 중증 질환 전문가들을 공급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치권은 ‘지역’과 ‘공공’이라는 구호에 집착한다. 행정부는 일단 뽑은 칼이니 무라도 베어야 했고, 뭔가 하는 모습은 보여야 했다. 대학은 어쨌든 몸집을 불리고 싶었다. 의대 입학의 문이 넓어지니까 수험생도 환호했다. 그러나 이미 과중한 진료와 교육 부담에 지친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그리고 교수의 입장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의미조차 부여할 수 없는 학생들을 환영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의정갈등의 여파로 황폐해진 교육 현장에서 학생 수 증가로 늘어나는 팀수업, 문제중심학습, 개별 지도, 실습활동에 교수의 협조와 참여를 구하는 것 역시 어렵다. 환자, 또는 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지역의사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중증 질환 전문가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지역의사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