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군사력)·달러(경제력)·관용. ‘제국의 미래’(2008) 저자 에이미 추아가 꼽은 미국 패권의 3대 동력이다. 추아는 미국의 슈퍼파워가 약화하고 있다면서 그 원인을 ‘관용의 상실’에서 찾았다. 이민자의 나라가 이민자를 추방하고, 이란·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퍼붓고, 중국에 수천 건의 제재를 가하는 독불장군식 행보가 미국의 리더십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계의 촘스키’로 불리는 가브리엘 콜코 역시 ‘제국의 몰락’에서 미국의 세기는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제국의 뒷배인 군사력과 경제력까지 경쟁국의 추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콜코의 분석은 다소 성급해보이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이 압박해도 대드는 국가가 날로 늘어나는 게 그 증거다. 중국은 미국이 무역전쟁을 강화하면 희토류 수출금지 카드로 역공을 편다. 러시아는 원유 수출 제재를 비웃듯 우회로를 통해 매달 수십억 달러를 벌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쏟아 붓는다. 북한의 핵 개발 역시 진행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연간 3000건 이상 신규 제재를 해도 굴복이 없다”고 할 정도다.
미국의 쇠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국가가 이란이다. 이란은 최근 18개월간 미국으로부터 1000건 넘는 제재와 폭탄 세례를 맞고도 승전국처럼 행동한다. 미국이 이란과 맺은 종전 양해각서(MOU) 역시 이란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은 이란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목표를 수정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아래 HEU를 희석하는 방식에 합의했다. 그 대가로 이란은 석유 판매 제재 면제와 동결 자산 전면 해제는 물론 약 460조 원의 재건 기금까지 약속받았다. 실리는 챙기면서도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선택을 달리 할 수 있는 잠재적인 핵 능력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22일 공개된 미국 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22%만 ‘미국에 더 유리한 합의’라고 평가했다.
미-이란 MOU는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때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불리던 이란이 거둔 대미협상 결과는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 없이 제재 해제가 가능하다’는 신호를 줄 가능성이 있어서다. 핵무기 개발 전 단계인 이란과 달리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핵 동결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로 북한의 체제 보장과 북미 관계정상화를 실현하려는 전략을 쓸 공산이 크다. 힘 빠진 제국의 미래가 한반도에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킬지 주목해야 할 시기다.
이노성 미래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