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조르주 퐁피두 국립예술문화센터(퐁피두센터)’는 세계 현대미술의 허브이자 예술의 도시 파리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루브르박물관이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오르세미술관이 19세기까지의 근대 작품 위주라면 퐁피두센터는 20, 21세기 동시대 미술을 다뤄 공공미술관끼리 역할을 분담한다. 1977년 개관한 퐁피두센터는 조르주 퐁피두 전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땄다. 2010년대부터 분관 정책을 펼쳤는데, 소장품 활용·브랜드 수출로 수익을 얻고 문화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이다. 분관을 원하는 도시는 컬렉션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세계적 미술관 지위도 얻을 수 있어 영입에 뛰어든다. 프랑스 지방도시인 메츠를 시작으로 2015년 스페인 말라가에 첫 해외분관을 열었고, 2019년엔 중국 상하이에 아시아 최초 퐁피두센터가 개관했다.
지난 수년간 한국에서도 부산 인천 등에서 유치 움직임이 치열했는데 서울이 선점했다. 퐁피두센터와 한화그룹이 파트너십으로 설립한 ‘퐁피두센터 한화’가 지난 4일 서울 63빌딩 별관에 개관했다. 한국 첫 분관이자 3호 해외분관이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에 맞춰 문을 연 것이다. 개관전 ‘큐비스트(입체파 작가): 시각의 혁신가들’에서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 등 입체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43명의 작품 91점이 소개됐다. 지난 6일 찾은 미술관은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단숨에 서울의 새로운 문화예술거점으로 자리 잡은 분위기였다. 2전시실 복층에서는 입체주의가 유행했던 시대, 한국 모던아트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김환기 박래현 등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특별전이 열렸다. 퐁피두 소장품에 한정되지 않은, 한국 분관만이 할 수 있는 기획이라 의미를 더했다.
서울은 문을 열었으나 설립을 추진 중인 부산은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역점사업인 퐁피두 부산분관 건립사업은 이기대 수변공원 일대를 미술관 신축 부지로 정하고 올해 설계비용을 예산에 반영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됐으나 지방권력이 교체되면서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내달 1일 취임할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이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시민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공론화가 예고된 참에 그동안 논란이 됐던 쟁점을 꼼꼼히 뜯어볼 필요가 있겠다.
퐁피두 서울분관을 둘러보고 ‘부산에도 이런 세계 정상급의 문화예술 랜드마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부산은 서울과 사정이 달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서울과 달리 부산은 공공미술관으로 설립이 추진되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지역 시민사회는 1100억 원의 건립비와 매년 125억 원의 운영비, 60억 원 이상의 브랜드 사용료 등 막대한 시민 혈세를 투입할 만큼 필요한 시설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극렬히 반대한다. 무엇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공공미술관이면 단순히 미술작품을 선보이는 장소를 넘어 지역사회 공적 소통과 담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파리 퐁피두센터는 이를 잘 드러낸다. 미술관은 4~6층에, 다른 층엔 국립도서관과 어린이미술관 같은 교육실 등 복합문화시설이 있으며, 특히 1층은 대형 로비가 마치 광장처럼 넓게 펼쳐져 ‘시민의 공간’임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서울분관은 이 같은 퐁피두센터 본관의 공간적 상징성은 전혀 없는 전형적인 ‘화이트큐브’였다. 사립미술관이어서 그렇겠지만, 공공미술관을 짓겠다는 부산시가 이 지점도 검토했을지 궁금하다.
스페인의 쇠락하던 지방 공업도시 빌바오가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개관해 세계적 문화도시로 성장한 사례가 퐁피두 부산분관 건립사업의 ‘롤모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간 대내외 문화환경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도 고려할 대목이다. 관광객을 끌어당길 유명 문화상품이 목적이라면 분관 없이도 부산시립미술관이나 부산현대미술관에 ‘블록버스터 전시’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충분히 활로를 찾을 수 있다. 퐁피두 서울분관도 화제를 모았으나, 같은 기간 더 주목받은 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였다.
이름값을 할 분관이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 대통령을 기리는 곳보다 국립중앙박물관 부산분관은 어떨까. K-컬처가 세계로 발산하는, 문화 사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 같은 환경이라면 외부 관광객 유치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문화상품은 없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작년 관람객 수는 외국인 방문객 급증 영향으로 개관(1945년) 이래 역대 최다인 650만 명을 넘었다. 대구 광주 전주 등 전국 13곳(본관 제외)에 있으나 대한민국 제2 도시 부산에는 아직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국립박물관이 없다. 일의 선후를 따져도 해외미술관 분관보다 국립박물관 유치가 먼저 아닐까. 판이 열리니 이제 제대로 공의를 모아보자.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