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인들은 목욕을 육체와 정신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여겼다. 핀란드의 사우나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국민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핀란드가 9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로 선정된 배경으로 사우나 문화가 꼽힌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따뜻하게 몸을 데우며 일상의 긴장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목욕탕은 이웃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었다. 그러나 공중목욕탕은 시대 변화와 함께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집마다 욕실이 생기면서 이용객이 줄었고, 코로나19 사태는 남아 있던 목욕탕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한때 1만 곳에 달하던 전국 목욕장 업소는 이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사양길에 접어든 목욕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주 고객이었던 중장년층이 아니라 20, 30대 젊은 세대가 새로운 이용자로 등장하면서다. 부산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우나를 즐기는 이른바 ‘소셜사우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참가자들은 사우나와 냉탕을 오가며 피로를 풀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함께 시간을 보낸다. MZ세대에게 목욕탕은 스마트폰과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디톡스 콘텐츠’가 됐다.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만큼은 스마트폰 알림도, 업무 걱정도 사라진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20, 30대 직장인들이 회사 동료와 사우나를 찾는 일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땀을 흘린 뒤 함께 식사를 즐기는 ‘사밥(사우나 후 먹는 식사)’ 문화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른바 ‘회식 대신 사우나’다. 튀르키예의 전통 목욕탕 하맘은 세신과 마사지, 휴식을 결합한 웰니스 관광상품으로 변신했다. 오래된 목욕 문화가 새로운 경험 산업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은 특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래온천과 해운대온천이라는 풍부한 온천 자원은 물론이고, 이태리 타월과 자동 등밀이 기계가 탄생한 목욕 문화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시설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텔링이다. 과거 웹툰 ‘목욕의 신’ 열풍으로 온천장과 목욕 문화가 주목받았지만 일회성 관심에 그쳤다. 목욕탕을 새로운 문화·관광 자원으로 살리는 열쇠는 부산이 가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국제신문이 목욕탕을 주제로 시리즈 기사 ‘냉탕과 열탕 사이’를 연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은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