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의 독특한 생태계가 그러하듯, 경계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공간적·사회적 현상은 언제나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다. 이러한 경계의 특성을 나타내는 핵심 주제어는 ‘다공성(Porosity)’이다. 도시와 건축 분야에서 다공성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1925년 나폴리를 여행하며 쓴 에세이 ‘나폴리’에서 도시의 물리적 구조와 사회적 삶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공성은 재료공학에서 일찍부터 사용된 용어이다. 재료공학에서는 하나의 물질계와 또 다른 물질계가 만나는 경계를 전이대(轉移帶·transition zone)라 칭하며, 전이대의 독특한 물리적 반응성을 다공성으로 읽어낸다.
전이대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물질과 물질이 만나는 경계에는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수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불안정한 영역이 존재한다. 전이대는 물질의 침투가 빠르고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공간이다. 벤야민 역시 이러한 불안정한 밀도 영역이 지닌 물성으로부터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고 발생하는 도시의 속성을 포착하여 이 단어를 차용했을 것이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는 단순한 지리적 선이 아니라 거대한 스케일의 전이대이다. 대륙이라는 고체와 해양이라는 유체가 충돌하는 지점에는 육지의 물리 법칙도 바다의 물리 법칙도 온전히 지배하지 못하는 ‘제3의 역학’이 분명 작용한다. 이곳에서는 육지의 논리인 ‘고정된 점유’나 ‘명확한 경계’가 힘을 잃는다. 대신 밀도와 압력의 차이에 따른 흐름, 그리고 조석 간만의 차처럼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확률적 물리 법칙이 지배하게 된다.
필립 스테인버그와 킴벌리 피터스의 연구 ‘습한 존재론, 유동적인 공간 : 해양적 사고를 통해 부피에 깊이를 부여하다’는 육지 중심적 사고(terrestrial thinking)로 바다를 바라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접근이 공간을 정의하고 통제하는 데 유리할지 모르나, 변화와 흐름,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라는 본질적인 요소들을 거세해 버린다고 말한다.
이러한 육지의 도시와 건축은 산업혁명 이후 자연을 정복과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며 중력에 저항하는 부동(不動)의 상태만을 지향해 왔다. 그러나 전이대의 도시와 건축은 이 같은 근대적 관성에서 벗어나 지역의 태생적인 다공성을 긍정하며 바다의 부력과 파동, 그리고 습윤한 공기의 흐름을 내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정된 형태에 머물지 않고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가소적(plastic)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관점을 빌리자면, 부산의 진짜 얼굴은 육지계와 바다계라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나 아름다운 간섭무늬를 만드는 중첩된 지점에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부산은 서울이라는 견고한 입자의 세계를 닮아가기 위해 스스로의 파동을 거세하고 있었다. 스테인버그와 피터스가 제안한 ‘습한 존재론(Wet Ontologies)’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시 ‘바다처럼’ 바라보라고 권한다. 물은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흐르며, 서로 다른 요소들과 끊임없이 섞이고 변형된다. 바다 도시에 사는 부산 사람은 육지에 발을 딛고 있지만 동시에 바다의 호흡에 의존하는 교집합적 존재이다. 바다는 수평적인 표면 아래 보이지 않는 깊은 흐름과 압력, 그리고 수많은 관계의 생명력을 품고 있다.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이 ‘해양수도 부산’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진정한 해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이제 부산의 공간 구조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 육지 중심의 도시들이 땅의 효율적 점유에만 골몰할 때, 바다 도시는 수평선으로 열린 경관과 그 연안을 시민 모두가 평등하게 공유하는 ‘공공성’에서 그 정체성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일 이어지는 북항 재개발 사업지의 특혜와 비리 뉴스는, 부산이 여전히 바다를 그저 ‘수익성 좋은 부동산 매립지’로만 취급하는 육지적 욕망에 갇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짜 문제는 해양 문화와 미래 부가가치를 담아야 할 공공의 영토에 법망을 피해 상업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꼼수로 시민과 부산의 바다를 사유화한 점에 있다.
해양수도 부산의 도시와 건축은 이제 지표면이라는 마른 평면 위에 물체를 쌓아 올리는 행위를 넘어, 이 중첩된 관계의 파장 속에 조심스럽게 발을 담그는 일을 해야 한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엄격히 나누는 거대한 건축장벽 대신,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변하는 다공성 워터프런트를 구축하고, 해수면의 유동성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가소적 형태의 건축적 대안들을 과감히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무수한 접점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용돌이들의 다양성을 복원해야 한다. 바다의 사고(oceanic thinking)는 경계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보다 개방적이고 탈중심적인 공간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독립적인 삶의 양식들이 파동처럼 서로를 간섭하고 중첩될 때, 부산은 비로소 서울의 입자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유연한 생명력을 지닌 진정한 해양 수도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