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있었다. 2005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이 의회에 출석해 한 발언이다. 그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했으나 시장의 장기금리는 하락했다. 예상치 못한 채권시장의 이러한 움직임은 수수께끼(Conundrum)”라고 언급했다. 2000년대 초 낮은 금리로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시장에 대거 몰리자 연준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통화긴축을 단행했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이 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함께 올라야 하는데 오히려 떨어졌다. 기존 경제공식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당시 금융시장의 기이한 움직임에 물음표를 남긴 것이다. 요즘 말로 ‘그리둥절(그린스펀의 어리둥절)’이었다.
기준금리를 20% 수준까지 올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렸던 폴 볼커의 뒤를 이어 1987년 연준 의장에 오른 그린스펀은 2006년까지 20년 가까이 경제수장을 맡으며 노련한 통화정책으로 미국과 세계 경제의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를 이끌었다. 적절한 유동성 공급 등 금융시장 안정을 유지했고, 전 세계를 위협하던 인플레이션도 비교적 안정세를 보여 대호황기를 진두지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도 의아해했던 지점은 이 골디락스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을 위시한 글로벌 대호황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신흥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오일머니가 안전 자산인 미 10년물 국채를 사는데 재투입됐다. 수요가 몰리니 채권 가격은 폭등하고 금리는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국내 통화정책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부동산 버블은 심화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퇴임 후였으나 그의 통화정책이 끝내 실패했다는 비난을 듣는 이유다.
지난 22일(현지시간) 그린스펀 전 의장이 향년 100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대한 단기대출 만기를 연장하도록 미국 은행들을 설득한, 우리에겐 고마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린스펀은 떠났지만 세계 경제에 수수께끼는 계속된다. 고금리 상황에도 미국 증시는 강세장이고, 한국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역대급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가 그렇게 많은 데도 환율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금융위기로 금리를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양적완화로 유동성을 확대해 수수께끼적 해답을 낸 그린스펀의 후임 벤 버냉키처럼, 창의적 대응을 기다려볼 뿐이다.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