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내 계좌에 알 수 없는 이름으로 소액이 입금된다. 당황하는 사이 통장은 거래 정지되고, “돈을 보내면 통장을 풀어주겠다”는 협박에 응하는 순간, 금융 범죄 피해자는 하루아침에 피의자 신세로 전락한다. 최근 필자의 사무소에도 이런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담이 부쩍 늘었다. 소위 ‘통장 묶기’ 수법에 걸려든 자영업자다. ‘통장 묶기’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을 신속히 보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를 악용한 신종 금융사기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4조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보이스피싱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사기 의심 계좌를 지급정지해야 한다. 문제는 허위 신고를 당한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지급정지를 풀 방법이 없다는 것인데, 사기범이 노리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대표적인 수법은 이렇다. 이들은 식당 간판이나 인터넷 쇼핑몰, 중고 거래 플랫폼 등에 계좌번호가 노출된 자영업자를 표적으로 삼는다. 소액을 송금한 뒤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송금했다”며 금융기관에 허위 신고를 한다. 신고의 진위와 관계없이 해당 계좌는 즉시 동결된다. 계좌이체와 체크카드는 물론 신용카드 자동이체까지 모든 금융거래가 막힌다. 사기범은 당장 계좌가 필요한 이의 절박한 심리를 파고들어 “합의금을 보내면 신고를 취하하겠다”며 수백만 원을 요구한다. 당하는 이들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다.
기존 보이스피싱이 피해자의 실수를 유도한 범죄라면 통장 묶기는 숨만 쉬어도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악질적이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급한 마음에 취한 행동이 독이 된다는 점이다. 사기범에게 합의금을 보내거나 출처 불명의 돈을 상대방 계좌로 송금하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한다. 수사기관이 이러한 사적 거래를 범죄수익 세탁이나 사기 방조 혐의로 의심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사기 피해자가 대포통장 명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경찰 조사를 받는 일이 빈번하다. 이때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사기 방조 혐의까지 더해지면 처벌 수위는 더 높아진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돈을 요구하는 사기범에게 어떤 경우에도 합의금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절박한 마음에 돈을 보내도 계좌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지급정지 해제 권한은 신고자가 아닌, 금융회사와 수사기관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합의금을 뜯어낸 후 잠적해 버리면 돈은 돈대로 날리고 통장은 묶여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모르는 돈이 입금됐다면 즉시 은행에 연락해 착오 송금에 따른 반환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협박 문자, 입금 내역, 사업자등록증 등 정상 거래임을 입증할 자료를 갖춰 신속하게 이의신청해야 한다. 경찰에도 자진 신고해 범죄 연루의 고의가 없었음을 적극 소명하는 것이 최선이다. 통장 묶기는 선량한 자영업자의 일상과 생계를 볼모로 삼는 위중한 범죄다. 계좌번호 노출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지만, 이미 출처가 불분명한 돈이 입금되었다면 흔들리지 말고 객관적인 증거부터 차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추락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