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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동의 ‘부신독서도’. |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은 역관 집안의 중인이었으나 재주가 많고 배포도 큰 인물이었다. 본래 한성법어학교에서 불어를 전공하며 서화미술회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프랑스인 선생의 영향으로 도쿄미술학교로 유학을 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화가로 활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화협회의 중심인물로 화단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이 되는 등 미술계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고희동이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남보다 일찍 근대 교육을 받은 덕이다. 조선시대의 중인 신분은 사회적 활동의 제약을 받는 계층이었지만 근대화되는 격변기에서는 오히려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신분이 되었다. 일찍 개화한 집안의 분위기에서 근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가업으로 내려온 외국어 능력은 세계사의 흐름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하였다. 일본 유학을 통한 근대 문물 수용은 화가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선진적인 사상을 지닐 수 있게 하였다.
당시 조선의 문화 생태계는 그동안 보기 쉽지 않았던 서양화를 받아들일 여건이 되지 못했다. 고희동은 어렵사리 배워온 서양화를 지속하지 못하고 다시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서양화법을 배운 것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예전 안중식 조석진 등 스승에게서 배운 화법에 원근법이나 수채화 채색 방식을 더해 자신만의 동양화 세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근대 학문을 통해 습득한 근대의식을 그림에 담기도 하였다. 1914년에는 최남선이 창간한 잡지‘청춘’의 표지에 늠름한 조선 청년의 기상을 표현하였고, 1920년에는 동아일보 창간호 1면의 표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고희동의 ‘부신독서도(負薪讀書圖)’라는 작품이 있다. “땔나무를 짊어지고 책을 읽다”는 내용이다. 얼핏 중국의 고사를 담은 평이한 그림으로 보이나 사실 그 속에는 국민을 계몽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 전한시대의 정치가인 주매신(朱買臣)은 젊은 시절 매우 가난하여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땔나무를 지고 오면서도 책을 읽는 등 많은 노력을 하여 50세의 늦은 나이에 발탁되었다. 결국은 고향 회계의 태수 자리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는 귀감이 되는 이야기다.
주매신의 고사는 조선시대에 널리 퍼져 김홍도 유운홍 등 여러 화가의 작품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작중 인물은 땔나무를 지고 오면서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너무 몰두한 나머지 발끝이 냇물에 빠질 것도 모른 채 걷고 있다. 의지에 찬 눈매와 꾹 다문 입 등 묘사에서 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나고, 필법에서 서양화법의 흔적이 보인다. 윗부분에 예서체로 단정하게 쓴 화제 글씨가 작품 내용을 집약한 듯 의연하게 보인다. 고희동은 이 작품 속에서 서구 열강과 일본의 근대문물이 밀려 들어오는 격변기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러했듯 끊임없이 스스로를 닦고 수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