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90도 절까지 하면서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후폭풍이 거세다. 투자액 규모가 800조 원이나 되는 반도체 공장 입지가 전남·광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비수도권은 비수도권대로 “왜 호남이냐”며 난리다. 부산 울산 경남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부울경이 무슨 이유로 반도체 생산거점 검토에서 배제됐나. 왜 호남인지 근거를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부산은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16개 시·도 중에서 15등, 대구는 꼴등이다. 그런데도 영남을 밀어주기는커녕 지역별 반도체·AI 투자액은 호남 896조 원, 충청 392조 원, 영남 312조 원으로 영남이 제일 적다. ‘영남 홀대론’을 뿌리 깊은 ‘호남 홀대론’의 반작용으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중앙정부가 지방에 대형 인프라를 추진할 때마다 수도권은 어떤 행태를 보였고, 비수도권끼리는 어떤 갈등을 빚었고, 그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부산의 가덕도신공항을 보자. 공항 건설 계획이 나온 지 23년 만에 겨우 시공사를 정하고 이제 첫 삽을 뜨기 직전이다. 그런데도 수도권 언론들은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기미만 보이면 “인천공항이 있는데 부산에 무슨 공항이 필요하냐”며 이제라도 백지화 하라고 난리다. 적은 외부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가덕도신공항 지연은 수도권 못지 않은 지역 내 갈등과 제살 뜯기에 더 큰 원인이 있었다. 부산에 신공항을 만든다고 하니 경남은 밀양을 주장하며 다리를 걸고, 대구는 통합신공항에 차질이 생긴다며 팔을 붙잡았다. 수도권은 굳이 힘 뺄 필요없이 팔짱 끼고 구경만 하면 됐다.
균형발전이 모토였던 노무현조차 수도권 규제를 풀어 경기 파주에 LG 디스플레이 공장을 허가했다. 이명박의 국토 정책은 수도권 정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무력화 해 공장신증설을 허용하고 그린벨트도 왕창 풀어버렸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라고 다르지 않았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의 노골적인 수도권 밀어주기 결과가 경기 용인의 SK하이닉스·삼성전자 반도체 클러스터이고,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캠퍼스다. 논밭 뿐이던 산단 주변 아파트 가격이 부산의 두 세배는 된다.
수도권이 비수도권 첨단산업단지를 반대하는 레퍼토리는 매번 똑같다. 지방엔 전력 용수 인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계획할 때도 부족했다. 그때 해결책이 송전선을 놓아 호남과 영남에서 전기를 끌고 가자였다. 호남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있고 재생에너지도 있다. 그래도 모자라면 다른 지역 전기를 끌어다 쓰자고는 왜 하지 않나. 수계가 한강 뿐인 수도권은 괜찮고 영산강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호남은 물 부족 지대라는 논리도 이해가 안 된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지만, 사람은 키우면 된다. 반도체 공장에 대단한 고급 두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지방이라서 근무 못 하겠다면 그런 인재는 우리도 필요 없다.
김대중이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정책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던 사실은 민주당 진영에서 굳이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다.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낙동강가 시골이었던 경북 구미에 대규모 전자산업단지가 조성될 때, 조그만 갯마을이었던 포항에 제철소가 들어설 때도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오늘날 이들 기업의 세계적 위상이 명쾌하게 말해준다. 따지고 보면 호남에 천문학적 반도체 투자가 가능하게 된 것이야말로 박정희 정책의 완결판이다. 이 역사의 섭리를 박정희와 산업화 주도세력을 낳고 안은 영남이 자랑스럽게 받아들이자.
지방선거를 의식해 메가 프로젝트 발표 시점을 일부러 늦추고, 친명계 민주당 당 대표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호남 퍼주기를 한다는 비판이 일리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용인의 1차, 평택의 2차와 달리 호남의 3차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은 국가첨단산업의 축이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첫 신호탄이라는 의미가 작지 않다. 성공하면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는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부산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현실이 호남 반도체를 반대한다고 개선되지 않는다. 부산은 이미 해양수도, 북극항로 거점도시, 글로벌 허브라는 목표가 뚜렷하다. 지방끼리 발목잡아 수도권에 반사이익을 안기고 수도권 일극주의를 강화하는 바보 같은 짓은 지난 30년 세월로 충분하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