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출입을 담당하던 때 기자들끼리 가장 신경전을 벌인 사안 중 하나가 경찰의 수사자료 발표 시점이다. 언론사마다 마감시간 등을 고려해 기사화 하기 좋은 시간대가 따로 있다. 신문과 방송이 다르고, 신문이라도 조간과 석간이 다르다. 조간은 오후에 뉴스 거리가 나와야 다음날 아침 따끈한 신문을 만들기 좋고 석간은 오전을 선호한다. 파장이 큰 사안일수록 각자 유리한 시간에 자료를 받으려고 경쟁이 치열하다. 때로는 경찰이 조직 홍보 효과, 여론 등을 고려해 발표 타이밍을 조절하기도 한다.
2012년 대선 직전 불거진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은 국가정보원 직원이 온라인 댓글로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국정원장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음으로써 이는 사실로 판명 났다. 그러나 선거 사흘 전 경찰은 한밤중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국정원의 선거 개입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기습 발표했다. 이명박 정권 아래 경찰의 이 행위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간 대결에서 누구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함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개혁신당 부산시장 후보였던 정이한 씨의 ‘테러 자작극’ 파장이 번진다. 정 씨가 10년 동안 알고 지낸 헬스트레이너와 짜고 음료수 투척 테러를 꾸몄다는 게 처음 알려졌을 땐 대부분 청년 정치인의 일탈에 혀를 차는 정도였다. 그러다 경찰이 6·3 지방선거 전 실체를 파악하고도 즉각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비판 타깃이 바뀌었다. 사건 발생은 4월 27일이고 경찰이 두 사람의 통화내역과 자백을 확보한 건 5월 중순께다. 하지만 경찰이 이를 언론에 공개한 시점은 투표 2주 뒤인 지난달 17일이다. 법원은 정 씨와 공범의 구속 사유로 ‘증거 인멸 우려’를 들었는데 경찰의 늑장 조치는 그들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과 뭐가 다른가.
지난해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 선고는 대선 한달전인 5월 1일이었다. 이것이 어떤 논란을 부를지 충분히 예상 가능했음에도 대법원 판단은 흔들림 없었다. 정 씨를 부산시장으로 선택한 시민은 3만 명에 가깝다. 다음날 아침까지 개표작업을 했어야 할만큼 박빙 승부를 펼쳤던 전재수 후보와 박형준 후보의 표차는 겨우 4만여 표다. 정 씨의 자작극이 일찍 알려졌다면 다른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고생 살인범 장윤기 때문에 보완수사권을 검찰에 남겨야 한다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던 차에 사유 하나가 더해졌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