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산업과 원양어업은 국가 식량 안보를 지탱해 온 핵심 산업이지만, 지금 현장은 심각한 전환점에 서 있다. 국내 원양어선의 상당수는 선령 30년을 넘긴 노후선으로, 기관 고장과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으며 강화되는 국제 안전·거주 기준에 대응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제 단순한 선박 교체를 넘어, 어선의 구조와 운용방식 자체를 바꾸는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노후화가 선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근해 및 원양어선에 탑재되는 핵심 조업장비, 수산물 이송·분류·냉동·가공 설비, 기관 제어 및 스마트 조업 지원 시스템은 여전히 유럽과 일본 등 해외 제품 의존도가 높다. 고장이 발생하면 부품 수급에 시간이 걸리고, 유지보수 비용과 외화 유출 부담도 커진다.
이러한 기자재 기반의 취약성은 현장의 인력난과도 맞물려 있다. 현재의 조업 체계는 숙련 선원의 경험과 수작업에 크게 의존한다. 고강도·고위험 작업, 열악한 거주환경, 선원 고령화가 겹치면서 청년층의 승선 기피는 심화된다. 조업장비 자동화, 선상 처리·냉동의 스마트화, 데이터 기반 조업기록과 상태진단 시스템 구축 없이는 한국 어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해외 어업 선도국들은 이미 어선을 단순한 ‘물고기를 잡는 배’가 아니라 조업·가공·냉동·품질관리·데이터 관리가 결합된 고부가 해양산업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왔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페로제도 등 북유럽 국가는 척당 1000억 원 수준의 대형어선을 중심으로 1차 산업인 어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데 많은 공을 들여 성공에 이르렀다.
이들 국가에서는 실시간 기상·해황 정보, 자동화 조업장비, 선상 급속냉동·가공 설비, 쾌적한 거주 공간과 안전시스템을 결합해 조업 효율과 인력 유입을 동시에 높인다. 그 바탕에는 수산기자재 산업 역량과 선박·기자재·ICT를 통합하는 엔지니어링 체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도 노후어선 대체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핵심 수산기자재의 스마트화, 국산화와 이를 실선에서 검증·보급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이는 개별 기업이나 단일 연구기관만으로는 어렵다. 선박설계, 조업장비, 냉동·가공, ICT·AI, 해양정책을 아우르는 산·학·관·연 협력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전담 거점으로 ‘수산기자재 고도화지원센터’ 설립을 제안한다. 이 센터는 핵심 조업장비와 선상 가공·냉동 시스템의 R&D 표준화와 국산화 로드맵을 수립하고, 실해역에서 장비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실증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기자재 인증·성능평가, 실선 탑재 기준, 해외 수주 대응 기술자료를 지원해 국내 보급과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부산은 대한민국 원양어업의 발상지이자 전진기지인 감천항을 보유하고 있으며 원양선사, 수산물 가공·물류 기업, 수리조선 및 조선기자재 기업이 밀집된 국내 유일의 어선산업 생태계 거점이다. 여기에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으로 해양수산 정책 수립과 집행의 중심축도 부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해수부의 적극적인 R&D 예산 투입과 국가 정책적 지원, 부산광역시의 지역 수산산업육성 의지, 그리고 국립부경대학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립수산과학원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수리조선소와 기자재산업계 등 산·학·관·연의 기술 역량이 하나로 결집되면 부산은 차세대 수산기자재 산업을 기반으로 K-해양수산산업을 이끄는 핵심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수산기자재의 스마트화와 국산화는 단순한 장비 교체 사업이 아니다. 식량 안보를 지키고, 노후어선의 안전사고를 줄이며, 조선·기자재 산업의 새로운 고부가가치 시장을 여는 미래 전략이다. 해양수산부와 부산광역시는 ‘수산기자재 고도화지원센터’ 설립과 스마트 수산기자재 국산화 기반 구축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산·학·관·연이 힘을 모을 때, 대한민국은 K-해양수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