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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양음(陽陰)’이 아니라 ‘음양(陰陽)’일까. 우리는 남녀(男女), 부부(夫婦)처럼 남성을 앞세우는 표현에 익숙하다. 그렇다면 ‘양음’이라 해도 어색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음양이라 했다. 음을 앞세운 데에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음이 지닌 중요성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동양 철학에서 음(陰)은 대지(大地)이자 어머니처럼 모든 생명을 품어 키우는 근원이자 바탕이다. 자연의 순환을 들여다보면 그 까닭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봄·여름에는 만물이 싹을 틔우고 자라며 꽃을 피운다. 생명이 밖으로 뻗어나가 제 모습을 펼치는 시기다. 가을·겨울이 되면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힌다. 열매 속에는 다음 생명을 이어갈 씨앗이 들어있다. 양(陽)은 밖으로 펼치는 힘이고, 음(陰)은 거두는 힘이다. 한 해의 순환은 꽃이 아니라 열매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음을 더 실속 있는 기운으로 본 것이다.
양의 기운은 명(名)을 만들고, 음의 기운은 실(實)을 만든다. 명은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고, 실은 실제적인 힘과 내공을 갖는 것이다. 사람도 세상에서 활동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명을 얻는 것처럼, 양의 기운은 밖으로 펼쳐져 모습을 드러낸다. 반면, 음의 기운으로 쌓인 힘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삶 속에 축적되어 실이 된다. 명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보이지만, 실은 시간이 지나야 빛을 발한다.
명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이름만 알려진 유명(有名)도 있고, 이름뿐 아니라 실력과 권세, 영향력까지 갖춘 명도 있다. 그 차이는 음양의 균형과도 관련된다. 양의 기운이 강하면 이름을 얻기 쉽지만, 음의 기운이 약하면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기 쉽다. 반대로 음의 기운이 튼튼하게 받쳐주어야 그 이름을 떠받칠 견고한 실(實)이 만들어진다. 세상에는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어도 뛰어난 실력과 권세를 갖춘 이들이 있다. 숨은 실력자는 대개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단순한 유명세나 이름(名)은 양의 기운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어느 한 가지 기운이 두드러지거나 특정한 재능만으로도 이름을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은 다르다. 세상과 어울리고 활동하는 힘과 안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함을 채우는 힘이 상보(相補)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 드러낼 때는 드러내고, 거둘 때는 거둘 줄 아는 조화가 바탕이 되어야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결실을 맺는다.
우리는 양기(陽氣)가 강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남보다 더 알려지고 더 많이 드러나기를 원한다. SNS와 미디어 역시 자신을 끊임없이 알리고 표현하도록 부추긴다. 게다가 사람이 쓸 수 있는 기운에는 한계가 있다. 바깥으로 향하는 데 힘을 많이 쏟을수록 다른 한쪽에는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운이 들뜰수록 안정감과는 멀어진다. 시간이 흐르면 그 빈틈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음양의 조화에는 나아가는 힘만큼 거두어들이는 힘도 필요하다. 때로는 말을 줄이고, 흩어진 기운을 안으로 모을 줄도 알아야 한다.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갖거나 명상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안으로 돌리는 습관도 하나의 방법이다. 명은 드러내는 힘에서 시작되지만, 실은 거두는 힘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양음(陽陰)이 아니라 음양(陰陽)이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