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과일이 물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고 술 기운 얼큰한데/침대 머리에 책 몇 권 어지러이 널려 있다/북쪽 창에서 서늘한 바람 불어 성긴 대숲 헤집고/누워서 푸른 하늘 바라보니 흰 구름 흘러가네’. 중국 북송시대 문인 소순흠(1008~1048)의 ‘서중한영(暑中閑詠)’이라는 시다. ‘더위 속에서 한가로이 읊어본다’는 뜻이다. 조정에서 떨어진 곳에 창랑정이라는 정원을 짓고 유유자적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에는 여름 나기 비법이 담겨있다. 차가운 물에 과일을 담가 먹거나, 숲에서 부는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 것이다. 그 바탕에 술이 깔려있다. 적당한 취기는 더위를 어느 정도 잊게 한다. 그런데 더위도 더위 나름이다.
해외뉴스에서나 보던 극한폭염이 부산에 밀어닥쳤을 때 회사 동료는 강원도로 도망갔다. 부산의 한낮 수은주가 39, 40도까지 치솟은 날 정선이나 태백은 20도 후반, 30도 초반에 머물렀다. 그는 “너무 선선해서 선풍기가 필요 없더라. 낮에도 긴 팔 입고 다녔다”고 했다. 여름 내내 도서관에서 ‘북캉스’를 즐겼다는 지인도 있다. 살인폭염과 열대야가 20일 이상 지속되는 동안 사람들이 제일 기피한 건 외출과 모임이다. 그 직격탄을 뜨거운 불판에 고기 구워가며 소주 한 잔 걸치기 좋은 고깃집, 치킨이나 맥줏집이 정통으로 맞았다고 한다. 주점 사장님들은 가뜩이나 술 소비가 줄어 타격을 입던 차에 폭염이라는 복병과 싸워야 했다.
부산에서 여름 휴가철 음주운전 적발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부산경찰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2일까지 단속한 음주운전은 377건으로 작년(642건)보다 41%나 낮아졌다. 음주운전에 의한 사고는 61건에서 35건으로, 부상자는 94명에서 51명으로 감소했다. 경찰은 매년 휴가철이면 음주 특별단속을 벌이는데 지난해만 해도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음주운전이 눈에 띄게 준 건 폭염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한다.
한반도 유사 이래 가장 큰 경제적 재난이었던 IMF 사태 시기에도 사람들은 술을 마셨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 자체가 금지됐으나 경찰 단속이 느슨한 이 때가 오히려 기회라던 술꾼을 주변에서 봤다. 경제난도 감염병도 말리지 못했던 음주를 폭염이 막았다. 때마침 장마철에도 귀했던 비가 내리 사흘간 부산을 적셨다. 도를 넘은 폭염이 한여름 밤의 낭만을 앗아갔지만 비가 그치고 더위가 한풀 꺾이면 시원한 생맥주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