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천륜과 법

권한의 사적 이용 막고 공평한 직무 수행 위해

가족도 잊어야 하는 게 공직자의 고독한 숙명

부남철 영산대 명예교수

  • 부남철 영산대 명예교수
  •  |   입력 : 2026-08-19 19:24:52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모는 자식의 범죄를 숨겨줄 수 있는가. 지금의 형법 제151조에는 그렇게 해도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되어있다. 범인과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범한 ‘범인은닉의 죄’에 대해 처벌상의 특례를 적용하는 것이다. 입법자들이 이런 법을 만든 근거는 무엇인가.

논어에 바로 이 문제를 거론한 대목이 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자식이 증언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고을에서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그와는 다르다. 아비는 자식을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를 숨겨준다. 정직함이란 바로 그렇게 하는 행위 속에 있는 것이다’(孔子曰吾黨之直者는 異於是하니 父爲子隱하며 子爲父隱하나니 直在其中矣니라).”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이 문장에 대해 ‘天倫(천륜)’과 ‘법(法)’이 충돌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情)은 천륜이고 법을 지키는 것은 직(直)인데 천륜이 직에 우선한다고 했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 부모는 자식이 죄가 있을 때 꾸짖고 자식은 부모에게 잘못이 있을 때 간곡하게 지적하지만 서로 허물을 숨겨주는 것이 사람의 본성과 이치에 맞는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죄인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인정상 외면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므로 범인이 숨은 장소나 그 행적에 대해 침묵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대응은 인정된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형법 제155조를 보면,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의 죄’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 특례를 인정하는 대상을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라고 비교적 넓게 규정하고 있다.

맹자에도 이런 이슈를 다룬 대목이 있다. 동양고전에서 최고의 효자로 인용되는 인물인데, 그의 타고난 지성과 성실함에 더하여 대효(大孝)를 인정받아 천자가 된 순(舜)임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 순을 죽이려고 했던 그의 아버지 고수(瞽瞍)와 순의 이복동생 상(象)의 패륜 행위는 맹자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순은 이들이 아무리 자신을 해치려고 해도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를 섬겼고 끝까지 동생을 용서하고 포용했다. 순임금에게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동생은 동생이라는 생각이 분명했다. 맹자의 제자는 이런 순임금은 만약 그의 부친이 살인자가 된다면 어떻게 처신할 것이냐고 가설적인 상황을 설정해서 질문했다. 맹자에 나오는 그 대화를 인용해본다.

“도응이 질문했다. ‘순이 천자가 되고 (강직한 신하) 고요(皐陶)가 법 집행을 맡은 관리가 되었는데,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맹자가 말했다. ‘고요는 그를 체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순이 막지 않을까요’. 맹자가 말했다. ‘어찌 순이 (천자라고 해서) 막을 수 있겠는가. 고요는 범인을 잡을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법에 따라 마땅히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순은 어떻게 할까요’. 맹자가 말했다. ‘순은 천하를 버리는 것을 마치 헌 짚신 버리듯 여기면서 (고수를) 업고 몰래 도망가서 먼 바닷가에 숨어 살며 평생토록 편한 마음으로 천하를 잊었을 것이다’.”

이렇게 순은 살인자 아버지를 업고 달아나고 순의 신하인 고요는 범인이 그의 상관인 천자의 아버지라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법대로 처벌하기 위해 도망자들을 추격하는 장면을 독자들은 상상하면서 맹자가 말하고자 했던 천륜과 법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자와 맹자에게 천륜과 법의 충돌 문제는, 순이 아버지를 숨겨주면서 천자의 자리를 즉시 버린 것처럼, 공직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직자에게는 모두를 위해 공평하게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라고 주권자가 믿고 맡긴 권한과 권력이 있다. 그는 그것을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을 위해 사적인 목적으로 쓸 수는 없다. 공인(公人)이 되어 법을 수호하기로 서약한 이상, 그는 공공의 영역에서는 가족을 잊어야 하며, 동료와의 친분과 의리를 모두 버려야 하는, 그래서 정책 결정과 법 집행 과정에서는 언제나 고독할 수밖에 없는 그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주역 동인(同人)괘 괘사(卦辭)는 특히 공직자에게 필요한 문장이다. “전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광야(廣野)로 나아가면 형통할 것이다(同人于野면 亨하리라).” 광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친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는 곳인데, 여기서는 자기 자신과 가족이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정이천(程伊川)도 이에 대해 “사적인 관계나 이익에 얽히지 않고 지극히 공적인 마음으로 모두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도(道)”라고 해설했다.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공직자는 이렇게 주역에서 말하는 그 거친 광야로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3. 3“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4. 4[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5. 5“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6. 6“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99건
  7. 7"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8. 8부산·울산·경남 일부 비…낮 최고 23∼26도
  9. 9AI 성착취물 텔레그램방 ‘그놈’…잡고 보니 경찰관
  10. 10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1. 1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2. 2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3. 3李대통령, ‘정청래 그만 괴롭히라’는 글에 “괴롭힌 거 아냐”
  4. 4軍 “北,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발사”
  5. 5추미애 “김지용, 언제든 국민과 정의에 등 돌릴 수 있는 자”
  6. 6靑, 北 탄도미사일 발사에 긴급회의…“안보리 위반, 즉각 중단 촉구”
  7. 7‘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8. 8[속보] “전두환 내란 아냐” 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의결
  9. 9김민석 부산 찾아 “전재수 시정 성공시키겠다”
  10. 10李대통령 “우크라, 상대국 원수 거짓말쟁이 만들어…사과 거부시 추가 조치”
  1. 1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2. 2“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99건
  3. 3"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4. 4정부의 농축산물 할인 지원 예산 급증… 재정 부담 가중될 듯
  5. 5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둘러싼 한·미 불협화음 언제까지 이어지나
  6. 6미래대응기금, 국감 쟁점 부상…국회 "재원 지속가능 의문"
  7. 71244회 로또복권 1등 18명…당첨금 16억469만 원
  8. 8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40.8원… 전주보다 0.9원 ↓
  9. 9[속보] 영화 ‘암살자(들)’ 투자 외부 개입 논란에…국책은행 “사실무근”
  10. 10"삼전닉스 ETF 출시 때 투자자 보호 대신 시장 확대만 급급"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3. 3“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4. 4부산·울산·경남 일부 비…낮 최고 23∼26도
  5. 5AI 성착취물 텔레그램방 ‘그놈’…잡고 보니 경찰관
  6. 6울산바위 배경으로 사진 찍다 추락한 70대 등산객 숨져
  7. 7ADHD 치료제 처방 2년 새 38% 급증…“공부 잘하는 약 없어”
  8. 8“차량 흔들린다” 술 취해 소화기로 버스기사 폭행한 60대
  9. 9초등학교서 뽀뽀하려는 친구의 장난…“학교폭력 처분 정당”
  10. 10‘부캉이’ 그물도 무용지물…하루만에 수로 안으로
  1. 1“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2. 2‘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3. 3[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4. 4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5. 5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6. 6한국, AG 남자 축구 4회 연속 금메달…결승 한일전 1-0 승리
  7. 7서채현,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리드 금메달
  8. 8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9. 9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10. 10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민원인(들)
AI 패권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생곡소각장 정치적 셈법보다 원칙대로 추진해야
알래스카 LNG, 협력하되 국익이 최우선이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인공지능(AI)과 인류 멸종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