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  |   입력 : 2026-08-23 18:46:40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오스트리아 괴트바이그 수도원(Stift Gottweig)이 보이는 말라트 (Malat) 와이너리의 포도밭.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묘한 리듬이 있다. 화려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았다. 도시는 클래식 음악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와인 한 잔을 통해 그 흐름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처음 빈에 도착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도시가 급하게 마시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커피도 그렇고 와인도 그렇다. 누군가는 두 시간을 들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또 누군가는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한 병의 와인을 곁에 둔 채 대화를 이어간다.

빈의 와인은 단순히 알코올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늦추는 하나의 방식이다. 특히 도시 외곽의 호이리게(Heuriger)에 가면 그 감정은 더욱 선명해진다.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병, 갓 구운 빵 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아코디언 소리. 그리고 노을빛 아래 반짝이는 그뤼너 벨트리너 한 잔.

오스트리아 와인은 대체로 조용하다. 프랑스 와인처럼 권위를 주장하지도 않고, 이탈리아 와인처럼 열정적으로 손짓하지도 않는다. 담백하게 자신의 결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오스트리아 와인의 스타일이 빈이라는 도시의 성격과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화려함보다 균형, 힘보다 긴장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선명한 산도와 깨끗한 과실, 섬세한 미네랄리티가 중심을 잡고, 과장하기보다 포도가 자란 땅과 빈티지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는 빈의 공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품종이다. 깨끗한 산도와 흰 후추 같은 섬세한 향신료의 여운은 마치 빈의 오래된 건축물과 닮아있다. 정교하지만 차갑지 않고, 우아하지만 과시하지 않는다. 리슬링 역시 마찬가지다. 또렷한 산도와 미네랄, 절제된 과실 뒤로 이어지는 긴 여운은 빈을 흐르는 클래식 음악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샤르도네를 만나면 또 다른 표정이 보인다.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샤르도네는 지나치게 무겁거나 화려하지 않고 신선한 산도와 섬세한 과실, 부드러운 질감이 조화를 이룬다. 화려한 무도회장보다는 공연이 끝난 뒤 조용히 불이 켜진 빈의 카페를 닮았다. 말수가 적지만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와인이다. 블라우프랑키쉬(Blaufrankisch)는 검붉은 체리와 베리, 후추와 허브의 향, 선명한 산도, 단단하고 세련된 타닌, 묵직함으로 압도하기보다 긴장감과 깊이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밤이 내려앉은 빈의 골목처럼 조금은 어둡고 진지하지만 묘한 따뜻함이 있다. 좋은 오스트리아 와인을 마시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여주기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밤이 깊어지면서 도시의 감정은 조금씩 달라진다. 고풍스러운 골목의 조명 아래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은 클래식 공연이 끝난 뒤의 정적과 비슷하다. 박수는 끝났지만, 감정은 아직 남아 있는 순간. 어쩌면 빈에서의 와인은 ‘맛’보다 ‘여운’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사람은 때때로 어떤 도시를 기억할 때 건물이 아니라 공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는 늘 향이 남아 있다. 빈의 향은 오래된 책장과 클래식 음악, 비에 젖은 석조 건물, 그리고 천천히 마시던 와인의 잔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게 만드는 감정의 속도이며,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빈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은 어쩌면 시간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중동 바퀴벌레 부산에 터 잡았다…감만항에 바글바글
  2. 2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흐려져…가끔 비 내리는 곳도
  3. 3[속보]트럼프 노벨평화상 불발에 격앙 “8개 받았어야”
  4. 4한화 김경문 감독·손혁 단장 동반 퇴진…후임 인선 착수
  5. 51245회 로또 복권 1등 10명…당첨금 각 30억 651만 원씩
  6. 6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9.5원… 전주보다 1.3원 ↓
  7. 75t건설기계로 용접 작업자 들이받아 숨지게 한 무면허 운전자 징역 1년
  8. 8푸틴과 손잡은 트럼프, 러시아 경유 공급키로…대러 제재 완화
  9. 9[속보] 서울서 지인 여성 찌르고 도주한 영국인, 9일 만에 영국서 검거
  10. 10‘갑자기 와르르’ 대구 마트 천장 붕괴에 36명 다쳐
  1. 1與 “한동훈 딸 수사 덮었나”…법무장관 당시 수사개입 의혹 공세
  2. 2나경원 ‘젤렌스키 감사 서한’에 與 “매국”…나 “친북 정권”
  3. 3국힘 “李 대통령, 北 저자세 정동영 즉각 경질하라”
  4. 4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5. 5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6. 6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7. 7李대통령 “능력 안되면서 큰자리 요구하다 안 되니 내부 공격”
  8. 8‘정청래 비자 보류’에 민주당은 유감…국힘 “한미동맹 균열”
  9. 9이 대통령 지지율 직전과 같은 37%…민주당 35%, 국민의힘 26%
  10. 10李대통령 “우리 말과 글의 힘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
  1. 11245회 로또 복권 1등 10명…당첨금 각 30억 651만 원씩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9.5원… 전주보다 1.3원 ↓
  3. 3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4. 4산은 회장 “통합 LCC 본사 부산행 결정 땐 적극 지원”
  5. 5부산 찾은 외국인 올 1~8월 343만 명 돌파…프랑스 관광객 작년보다 111%↑
  6. 6전재수 “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조속 통과…소급적용도 추진”
  7. 7[뉴스 분석] 수도권, 가덕신공항 또 트집…국책사업 발목 자성 촉구 목소리(종합)
  8. 8태웅, 1년 갈등 ‘봉합’…노사정 상생협약 체결
  9. 9‘극지해양 독후감’ 공모전 대상 고등부 김세형, 대학·일반부 하웅 씨
  10. 10부산항 오는 배 위치 실시간 확인
  1. 1중동 바퀴벌레 부산에 터 잡았다…감만항에 바글바글
  2. 2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흐려져…가끔 비 내리는 곳도
  3. 35t건설기계로 용접 작업자 들이받아 숨지게 한 무면허 운전자 징역 1년
  4. 4[속보] 서울서 지인 여성 찌르고 도주한 영국인, 9일 만에 영국서 검거
  5. 5‘갑자기 와르르’ 대구 마트 천장 붕괴에 36명 다쳐
  6. 6천장 마감재 와르르…주방용품 판매 중 날벼락에 38명 부상(종합)
  7. 7한글날 연휴 둘째 날 북항에 5만9천명…‘부캉이’ 누적 방문객 127만명
  8. 8[속보]법원 선처 받아 출소한 날 택시기사 얼굴에 주먹 휘두른 50대
  9. 9경찰, 대구 상가 천장 붕괴 사고 수사전담팀 구성…33명 투입
  10. 10[속보] 청주공항 이륙 전 승객 보조배터리에서 화재…인명피해 없어
  1. 1한화 김경문 감독·손혁 단장 동반 퇴진…후임 인선 착수
  2. 2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3. 3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4. 4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5. 5김영광, 보복 운전 사과 “운전 습관 돌아보겠다”
  6. 6막 오른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최예본·한아름 공동 선두
  7. 7“핸드볼 8년 만의 아시안게임 金…맏언니로서 기뻐”
  8. 8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9. 9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10. 10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배우 한선화
유튜브 쇼츠 정치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삼전 영업익 107조 시대…미래기금 지방우대 필요하다
‘부캉이 열풍’이 던진 부산관광 활성화의 과제
세상읽기 [전체보기]
빚을 물려받는 사회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