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커뮤니티에 있는 헬스장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3~4명이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이 갑자기 윗옷을 벗더니 그 상태로 이 기구 저 기구 서슴없이 돌아다녔다. 여성들로선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보다 못한 한 아저씨가 나섰다. “어이 옷 좀 입어라. 여기서 그러면 안돼.” 하지만 아들뻘 남성은 들은 척도 않고 거울을 힐끗힐끗 봐가며 하던 행동을 계속했다. 그때 이 소란과는 별개로 부분 탈의가 같은 남성이 보기에도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 약간은 안도감을 느꼈다.
2007년 8월 외신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이 게재됐다. 야성미 넘치는 서부영화 주인공처럼 상반신을 완전히 노출한 채 낚시를 즐기는 장면이었다. 당시 차기 주자로 거론되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로의 정권이양은 꿈도 꾸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도 건강 이상설이 돌 때면 상의 없이 반바지 차림으로 해변을 거니는 모습이 백악관을 통해 종종 공개됐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탈의에는 정치적 함의나 이미지 관리 같은 비교적 분명한 목적이 있다. 일반인은 어떨까.
상의를 벗고 뛰는 사람, 일명 ‘상탈 러너’들이 부산에서도 논란이다. 최근 러닝 붐에다 이례적인 여름 폭염까지 겹치자 덩달아 증가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연제구 온천천 일원에서도 ‘상탈족’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소 60대는 된 듯한 장년 남성은 상체는 맨몸, 바지는 쫄쫄이 차림이다. 여성이나 아이가 지나다니는 보행로 옆에서 예사로 옷을 갈아입는 ‘몸짱 노인’도 있다. 해운대나 광안리처럼 가벼운 옷차림이 태반인 구역에서도 상탈 러닝은 보편적 지지를 못 얻는데 남녀노소가 일상을 즐기는 공원이나 강변에서는 불쾌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더 많다. 상탈족을 단속해 달라는 경찰 신고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평상복이 된 레깅스를 30여년 전 외국에서 처음 보고 상당히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상탈족 입장에선 “더우니까 벗었다” “벗으면 운동이 더 잘 된다”에서 나아가 나름 잘 가꾼 몸매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타인이다. 레깅스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 것처럼 다른 이의 맨살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직은 많다. 신사 스포츠라 불리는 테니스나 골프는 올바른 복장이 운동의 시작이다. 러닝에도 ‘런티켓’이 존재한다. 찾아보니 한 연예인이 기자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대신 해놓았다. “옷 없냐. 뛸 때 티셔츠 한 장은 꼭 챙겨라.”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