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원할 때 시작할 수 있어도 원할 때 끝낼 수는 없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사’에 남긴 말이다. 전쟁만큼 시작하기보다 끝내기가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시작은 한쪽의 결단으로 가능하지만, 끝내려면 상대의 동의가 필요하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출구를 찾기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단기간에 끝낼 것이라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도 비슷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 2월 28일 이란을 공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장대한 분노’ 작전의 목표를 4~6주 안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전쟁은 예상대로 끝나지 않았다. 60일간의 종전 협상은 합의 없이 끝났고 지난달 30일 미군의 라라크섬 공격 뒤 이란의 미군 기지 공격까지 이어졌다.
호르무즈해협에서 벌어지는 미·이란의 교전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이 좁은 바닷길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요충지다. 한국도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다. 이 바닷길이 막히면서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한국의 이란전 관련 기여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공개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 압박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지난 4일 호르무즈해협 파병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대비 태세에 큰 손상이 있지 않은 범위 내에서는 운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병을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군사적 기여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기뢰탐지장비 등의 투입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동맹을 생각하면 미국의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언제든 교전이 벌어질 수 있는 위험한 바다다. ‘비전투 파병’이라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뢰 제거에 나선 군함이 언제든 공격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호송 임무가 어느 순간 교전으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란 고위 당국자가 한국이 이란에 맞서는 행동을 하면 전쟁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한 것 역시 가볍게 들을 일이 아니다.
물론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에너지 안보와 국제적 책임을 외면할 수는 없다. 다만 파병을 감행하기에 앞서 정부는 그 목적과 한계 등 명백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이 문제가 소모적인 국론 분열의 도화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여야를 넘어 오직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에 둔 치밀하고 냉철한 결단이 필요한 때다.
이은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