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문제의 정책적 해법은 일련의 공식처럼 다뤄진다. 자산 양극화에는 ‘청년이 저축하면 지원’하는 자산형성 지원사업이 등장하고, 일자리 문제에는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로의 성장’을 돕는 취업역량 강화와 일경험 사업이 따라붙는다. 청년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에는 ‘위원회 위촉 비율 확대’와 각종 참여단 운영, 공모전을 통한 아이디어 제안 창구 마련 등의 방식으로 답한다.
각각의 정책은 당장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이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어느새 문제를 해결하는 주된 해법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산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청년들의 저축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지난해 20대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평균 순자산 격차는 19배로, 모든 세대 가운데 가장 컸다. 이 격차의 배경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부모의 지원 여부였다.
그렇다면 정부의 질문은 ‘왜 같은 세대 안에서도 출발선의 격차가 이렇게 커졌는가’에서 시작돼야 한다. 청년의 저축 규모에 맞춰 정부가 보태는 방식에 머무르기보다, 부모의 자산과 무관하게 최소한의 출발선이 보장되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 역시 청년들의 역량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자리 문제 만큼은 청년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기업과 대학이 해결의 주체로 나선다. 올해 초에는 ‘청년들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선호한다’, ‘청년의 기대 임금 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잇따랐다. 그러나 이를 청년의 달라진 선호라고만 해석해도 될까. 오히려 더 나은 일자리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현실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익숙한 표현 뒤에는 청년들이 실제 일터에서 겪는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계약, 부실한 교육과 관리, 반복되는 수습과 인턴,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의 경험이 놓여 있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진단을 넘어, 청년에게 제공되고 있는 일자리 자체의 질을 물어야 한다.
청년을 제대로 고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기업까지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 주체’로 설정되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청년 일자리 문제와 기업 지원 정책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하기 어렵고 청년을 채용하고 성장시킬 역량조차 부족하다면, ‘안 뽑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못 뽑음’의 문제다. 그런데도 이러한 기업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지원받는다면, 청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름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청년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이유도 청년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해서도, 단순히 위원회에 청년 몇 명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논의 구조 안에서 어떤 정보와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정책 결정 과정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지, 이를 뒷받침할 지원 구조가 마련돼 있는지를 물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꾸 문제의 원인을 청년 개인에게 돌린다. 돈을 모으면 지원하고, 역량을 키우면 기회를 주고, 회의에 들어오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조가 만들어낸 격차를 개인이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 더 경쟁력을 갖추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건 최선을 다한 결과가 아니라, 가장 쉬운 회피다. 구조를 바꾸는 대신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미래세대로서 청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제는 이 익숙한 회피에서 벗어나 구조를 바꾸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존 구조를 떠받쳐온 이해관계와 관성을 직시하고, 이를 허물 방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정말 ‘흐린 눈’을 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청년 개인의 저축과 역량과 참여를 탓하는 동안, 그 뒤에 숨은 불평등한 구조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 이름 몇 개가 아니라, 수년간 쌓여온 이해관계를 무너뜨리고 정말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각오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