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바다에서 수많은 배가 세계로 떠나고, 항만의 성쇠에 따라 도시의 경제와 풍경이 바뀐다. 부산항은 150년 동안 부산의 삶과 함께해 왔다. 그런데 정작 그 항만의 중요한 운명을 결정하는 권한은 부산에 주어지지 않았다. 정부가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를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 오랜 역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가 내세우는 것은 효율성이다. 유사·중복 기능을 줄이고 운영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항만은 조직을 합친다고 경쟁력이 높아지는 곳이 아니다. 세계의 항만과 매 순간 경쟁하는 현장이고,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느냐가 생존을 좌우하는 산업의 전장이다. 더구나 4개 항만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화물도 다르고, 배후 경제권도 다르며, 경쟁 상대도 다르다. 이들을 하나의 법인 아래 묶는 것이 정말 효율적인지 따져봐야 한다.
부산이 특히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항은 국내 최대 항만이자 세계적인 환적항이다. 항만 경쟁력의 핵심은 결정의 속도와 투자 타이밍이다. 어느 곳에 어떤 시설을 확충할지, 어떤 선사를 붙잡을지, 급변하는 물류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현장의 판단이 중요하다. 부산항이 다른 항만과 하나의 조직으로 묶여 주요 사업과 투자를 조율해야 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질 게 자명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4개 항만공사를 합칠 것인가보다 먼저, 부산항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논해야 한다. 부산항만공사에는 ‘부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부산시가 운영하는 기관이 아니다. 부산항이 도시의 경제와 공간,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지만 시가 항만의 주요 의사결정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쯤 되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부산의 미래를 좌우하는 항만을 부산이 더 많이 결정할 수 없는가. 부산은 해양수도를 말한다. 해양수산부 부산시대를 열었고, 북극항로의 관문도시로 도약 중이며, 해운·금융·물류산업을 집적한다는 구상도 본격화한다. 한쪽에서는 해양수도를 외치면서 다른 쪽에서는 부산항의 의사결정 권한을 더욱 중앙으로 모으려 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보다 분권에 대한 논의다. 물론 항만은 국가기간시설이다. 국가 안보와 해상교통 등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 있다. 다만 항만 개발과 배후지역, 도시와의 연계, 친수공간 조성 등 지역의 삶과 맞닿은 영역까지 중앙정부가 모두 쥐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시가 부산항만공사 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시의회가 시민의 눈으로 이를 견제하는 구조를 검토해야 한다.
물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시가 항만 운영에 더 깊이 참여한다면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항만공사를 정치적 전리품처럼 다뤄서도 안 된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항만정책이 흔들리는 구조라면 중앙정부보다 나을 것이 없다. 분권은 ‘내가 갖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항만의 주인은 시설을 소유한 기관이 아니라 그 항만의 미래를 책임지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산항만공사를 하나의 지사로 만들고 전국 항만을 한 법인으로 묶는 것이 과연 ‘해양수도 부산’을 위한 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산항에서 만들어진 성과가 다시 부산항에 투자되고, 부산의 산업과 일자리, 도시 발전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바다는 경계가 없지만 항만에는 지역의 얼굴이 있다. 부산항은 부산의 산업과 사람, 도시의 성장과 함께 150년의 항로를 걸어왔다. 이제 다음 150년을 준비해야 한다. 그때도 부산항이 이름만 빌린 채 부산의 손을 떠나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항만공사의 통합을 서두르기 전에 물어야 한다. 부산항의 주인은 누구인가. 부산도 답해야 한다. 부산항의 미래를 부산이 결정할 것인가. 결정한다면 그 결과에 책임질 것인가. 통합은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고, 분권은 책임을 나누는 일이다. 부산항에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인가. 그 답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병욱 해양수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