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난달 재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 전경. 국제신문DB |
9월 17일 부산시립미술관이 재개관했다. ‘퓨처 뮤지올로지’는 국내외 아홉 미술관과 함께 미술관의 새로운 역할을 탐색하고,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1945-1953’은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의 사회를 작품과 기록으로 돌아본다. 하나는 과거를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읽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미술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부산에는 이미 부산현대미술관이 있다. 자연·뉴미디어·인간을 주요 의제로 삼아온 기관이다. 시립미술관이 역사와 소장품뿐만 아니라 미래와 실험의 영역까지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면 현대미술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반대로 현대미술관은 그동안 자신만의 역할을 충분히 보여줬는가.
공립미술관의 차이는 이름에서 생기지 않는다. 한쪽에 ‘시립’, 다른 쪽에 ‘현대’라는 간판을 붙였다고 역할이 저절로 나뉘는 것도 아니다. 시립미술관이 동시대 미술을 다룰 수 있고, 현대미술관도 역사적인 작품을 연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수집하며, 어떤 작가와 작업을 책임 있게 지원해 왔는가다.
문제는 지금 부산에서 그 차이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두 기관이 비슷한 동시대 작가를 초대하고, 비슷한 담론을 좇고, 비슷한 형식의 기획전을 반복한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굳이 두 미술관을 따로 운영해야 할 이유를 묻게 된다. 같은 부산시의 예산과 인력을 쓰는 두 기관이라면 한 곳이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곳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할을 나눈 두 미술관이 아니라 기능이 겹치는 두 조직에 머문다.
해외 사례를 보면 새 미술관의 설립은 기존 기관과의 역할 조정으로 이어졌다. 파리의 오르세는 루브르와 국립근대미술관 등의 작품을 넘겨받으며 자신이 책임질 시대를 분명히 했고, 도쿄도현대미술관 역시 개관에 앞서 도쿄도미술관의 소장품과 자료를 이관받았다. 미술관 하나를 더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가 더 필요한지를 정하는 일이다.
부산도 이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어떤 기관이 지역 미술사와 소장품 연구를 깊게 가져갈 것인지, 누가 새로운 제작과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눠야 한다. 모든 것을 조금씩 하는 두 미술관은 결국 아무것도 분명하게 책임지지 않는 두 미술관이 될 수 있다.
관장 선임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번 재개관전에는 서진석 관장의 관심과 전문성이 반영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시는 왜 그를 시립미술관의 장으로 선택했는지, 이제 곧 선임해야 하는 부산현대미술관장에게는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기관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은 채 사람부터 정하면 미술관의 방향도 관장 개인의 관심을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관장의 개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공립미술관은 한 사람의 임기보다 오래가야 한다. 사람이 바뀌어도 연구와 수집, 전문성은 남아야 한다.
부산에는 두 개의 공립미술관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두 미술관을 유지하는 명분이 아니라, 두 미술관이 각각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그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왜 두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