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은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인간 생명을 거두는 최후의 형벌이다. 고대부터 사형은 범죄에 대한 응보인 동시에 권력의 위엄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고대 로마는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을 진압한 뒤 포로 약 6000명을 아피아 가도(고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에서 십자가형에 처해 저항의 대가를 보여줬다. 중세 유럽에서는 광장 처형을 통해 범죄자를 응징하는 한편 통치 질서를 과시했다. 1793년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가 파리에서 단두대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조선 ‘태종실록’에는 1410년(태종 10년) 개국공신 조호가 모반·대역죄로 한양 중심가에서 거열형에 처해졌고, 그 시체를 각 도에 보내 백성이 돌려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능지처사형이 폐지됨에 따라 사실상 공개처형이 사라졌지만 미국에서는 1936년 켄터키주에서 70세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레이니 베시아라가 법원 인근 공개된 장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공개 교수형을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지켜봤다. 외지에서 형집행을 보러 온 구경꾼도 있었다. 전국적인 논란을 일으킨 이 사건으로 켄터키주는 결국 1938년 공개 교수형을 폐지했다.
미국에서 총살 집행 생중계 추진이 논란이다.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09년 텍사스주 포트후드 육군 기지에서 총기를 난사해 13명을 숨지게 해 사형이 확정된 무슬림 총기 난사범 니달 말릭 하산의 공개처형을 승인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총살 집행은 12월 3일 오후 1시. 2009년 총기 난사를 벌였던 그날, 그 시각 형을 집행한다. 문제는 이 총살 집행 현장을 방송이나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수표심을 결집시키려는 ‘트럼프식 쇼’라는 비판이 거세다. 김정은이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특별군사재판에 회부해 공개 처형한 사건이 겹친다. 권력을 위해 혈육마저 제거한 김정은의 잔인한 행태나, 중간선거에 총살형 생중계를 이용하는 트럼프의 비이성적 발상이 섬뜩하다.
고대 로마 광장과 중세 처형대가 오늘날 방송 화면과 온라인 생중계로 바뀌었을 뿐 죽음을 구경거리로 삼는 본질은 같다. 권력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잔혹함을 과시해 지지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형벌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권력자의 잔혹함을 전시하는 공연이 아니다. 처형 장면에 박수를 보내도록 길들이려는 자와 그 사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한다.
임훈 독자여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