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수 부산시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민생 회복 대책과 미래 도시 구상을 내놓았다. 공개 주간정책회의에서 당면 과제를 점검하고, 기자회견에서는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와 북항 돔 아레나 조성 계획을 밝혔다. 시민의 삶을 돌보면서 해양수도 부산의 도약을 준비하겠다는 방향은 긍정적이다. 이제 이 청사진을 실행할 재정과 사회적 합의를 확보해야 한다.
100일은 시정의 성패를 가늠하기에는 짧지만, 운영 철학을 살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의전 중심의 기념행사 대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태도는 신선했다. 그러나 소통 방식의 변화가 정책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1조3783억 원 규모의 민생 비상조치도 상당 부분은 대출과 보증 등 금융 지원이다. 발표한 금액만으로 성과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저리 융자는 당장의 숨통을 틔워 주지만 상권 침체의 구조적 원인까지 해소하지는 못한다. 빈 점포 채움 사업 역시 입점 실적보다 지원 종료 후의 생존율로 평가해야 한다.
시정 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14일 발표한 문화 사업 재검토 결과다. 전 시장은 퐁피두센터 부산분관 건립을 중단하고, 오페라하우스 개관작으로 추진하던 라 스칼라 초청공연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전임 시장의 사업이라고 무조건 뒤집지는 않겠다며, 석 달 동안 정책점검단과 시민토론회, 여론조사, 타운홀 미팅을 거쳐 내린 결론이다. 판단 기준으로는 시민 체감도, 공공성, 재정 지속 가능성, 행정 책임성이라는 네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중단 사유도 가볍지 않다. 퐁피두 분관은 국가지질공원인 이기대의 자연 훼손이 우려되는 데다, 비공개로 체결한 양해각서의 조건도 부산에 불리했다. 건립비 1100억 원과 연간 운영비 125억 원이라는 재정 부담도 컸다. 지역 예술계의 공감 역시 충분히 얻지 못했다. 라 스칼라 공연은 시민 다수가 찬성했지만 기부와 협찬이 계획에 미치지 못했다. 공연장과 운영체계를 충분히 갖춘 뒤 첫 무대를 여는 편이 낫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원칙을 세우고 절차를 거쳐 결론을 내린 방식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공론화의 신뢰를 높이려면 판단의 근거가 된 자료와 의견 수렴 결과도 공개해야 한다.
사업 중단으로 시의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는 대안으로 북항 복합문화전시공간을 2030년 하반기까지 전액 국비로 짓겠다고 밝혔다. 국비 확보 방안과 추진 일정이 뒷받침돼야 실현 가능한 약속이 된다. 2028년 개관할 오페라하우스도 ‘반쪽 개관’이라는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지역 예술인과 함께할 개막 무대와 운영 구상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의 감사 청구는 정책 결정 과정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되, 전임 시정을 둘러싼 정치 공방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직야구장 재건축 역시 같은 원칙과 절차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대형 문화시설과 국제행사에 기댄 도시 전략을 뒤돌아보게 한다. 전 시장의 새 구상에도 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할 것은 물론이다. G20 정상회의 유치는 투입 비용과 지역에 돌아올 실익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북항 돔 아레나는 민간과의 위험 분담, 운영 적자에 대한 책임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새 사업에서도 협약을 공개하고 시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때 이번 결정의 설득력은 커진다. 생곡 소각장처럼 주민 수용성이 핵심인 사업은 더 세심한 설명과 협의가 필요하다.
여소야대 시의회와의 관계에서도 정치적 조정력이 요구된다. 의회는 이번 결정을 전임 시장의 치적 지우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시장은 당선을 백지위임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의회도 견제 권한을 정파적 대립에 소모해서는 안 된다. 시는 숙의 자료와 대안 사업의 재정 계획을 의회에 충실히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국비 확보와 산업은행 이전 등 지역 핵심 현안에는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정치적 조정력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시험대는 부울경 광역 협력이다. 특별연합과 행정통합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볼 이유는 없다. 필자는 행정통합을 장기 목표로 합의하되, 특별연합을 사전 단계로 가동하는 ‘투 트랙 해법’을 제안한다. 한 축에서는 통합정부의 권한과 재정, 특별법을 준비하고, 다른 축에서는 특별연합을 통해 교통 산업 의료 등 주민이 체감할 공동 사무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함께 일하며 성과를 쌓아야 지역 간 불신을 줄이고 통합의 토대도 마련할 수 있다. 다만 사전 준비 단계를 이유로 통합 논의를 무기한 미뤄서는 안 된다. 특별연합의 공동 사무와 재원 분담을 정하는 동시에, 통합 협상의 일정과 단계별 전환 조건도 합의해야 한다. 통합이라는 목표와 연합이라는 실행 수단을 연결하는 정치적 타결이 시급하다.
첫 100일은 민생을 앞세우고 도시의 방향을 제시한 출발선이었다. 이제 시민은 비전이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지는지 지켜볼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