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만 해도 시험관아기 시술로 임신에 성공하면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뻐하던 시절이었다. 시험관아기 시술의 임신율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던 당시 난임 분야의 학술대회는 임신율을 높이는 방법에 주로 시선이 쏠렸다. 그런 학술대회가 대부분 서울에서 열리던 때, 부산에서도 최신 의학지식을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1997년 국내외 교수를 초청해 시작한 ‘세화 심포지아(Symposia)’는 오늘날 ‘세화 아카데미’로 이어지고 있다.
난임 진료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도 있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정자를 냉동 보관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왔다. 정액검사 결과 정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무정자증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고환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암을 치료하는 것만큼 치료 이후의 삶과 미래의 가능성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항암·방사선치료 전 난자와 정자의 냉동보관을 주제로 세화 아카데미를 열었다.
시험관아기 시술의 임신율이 높아지면서 고민도 달라졌다. 임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반복되는 시도 속에서 겪는 실망과 좌절은 의학적 수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난임 환자를 이해하려면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했다. 세화 아카데미에 미술과 음악, 건축 등 인문학을 함께 담기 시작한 이유다.
임신은 사람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조물주가 관장하는 신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조물주에게 맞서겠다는 심정으로 지난 2014년 ‘과학과 인문학의 충돌: 창조적 파괴’를 주제로 아카데미를 열었다. 역시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하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혁신(끝없는 나그네길)’로 이어졌으나, 임신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고개 쳐들고’ 조물주에게 저항하던 마음을 접고 꼬리 내리는 심정으로 ‘과학과 인문학의 화해: 비움(내려놓음)’을 주제로 아카데미를 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세화 아카데미를 열지 못한 해도 있었지만, 난임 부부에게 임신의 희망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학회를 이어 오다 보니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육은 개인의 습관에 영향을 미친다.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에는 매주 아침 논문을 발표하는 초독 시간이 있었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험관아기 시술을 주제로 발표했고, 뉴욕 코넬대학교병원의 난임 펠로우 과정에서는 매주 하나의 주제를 놓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또 샌디에이고 의과대학 생식내분비학 교실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 7시에 실험 결과 데이터를 발표했다. 그때 몸에 밴 습관은 지금도 이어져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이면 의료진이 돌아가며 논문을 발표하고 함께 공부한다.
3년 전 어느 날, MBC에서 작가로 근무했던 한 분이 불쑥 말을 건넸다. “원장님, 저 이제 필요 없어요.” 그러면서 인쇄된 리플렛 세 장을 내게 내밀었다. 1997년 처음 개최했을 때와 1998년, 1999년 당시 세화 심포지아의 리플렛이었다. 그녀는 리플렛에 구멍을 두 개 뚫어 파일에 끼운 채 25년 동안 보관하다가, 이제는 필요 없다며 내게 돌려주었다. 그 작은 종이 석 장에는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마운 마음은 컸지만, 25년이나 간직한 리플렛을 돌려주는 그 마음에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사실 매년 8월 열리는 세화 아카데미를 올해는 잠시 쉬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올해는 왜 숙제를 하지 않느냐”며 정겨운 추궁을 했다. 그래서 올해 12월 ‘난소의 노화와 줄기세포 치료’의 과학 주제와, ‘한에 맺힌 판소리’라는 인문학 주제로 ‘세화 아카데미 2026’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