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있으면 어떤 소나기나 우레도 막아줄 것같이 든든한 사람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보면 힘닿는 데까지 도우려 애를 쓰지요. 메고 다니는 가방이 너무 커서 한쪽 어깨가 좀 기울어진 것 같지만 입가엔 늘 맑고 선한 웃음이 흐릅니다. 생각은 깊고 판단은 바르며 행동은 빠른 사람입니다. 그 넓은 가방 속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응급조치가 가능한 것을 보면 마법 가방이 분명합니다.
부채나 작은 선풍기, 손난로, 손톱깎이, 가위, 붕대, 반창고, 연고, 간식거리는 기본이며 여분의 옷가지에 수건, 돋보기까지 나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어디선가 부딪힐 급박한 사태에 대비한 것들이지요. 손발톱 깎아주기, 상처 난 곳 테이프로 감아주기, 돋보기 걸쳐주기, 폰이나 컴퓨터 손봐주기까지. 대상에 따라 때와 장소가 따로 없습니다. 사람과 기계는 물론 바닷속 산속까지 더듬고 다니며 허기지거나 앓고 있는 곳을 쓸어주고 닦아줍니다. 진통제처럼, 소화제처럼, 영양제처럼, 충전기처럼.
‘오지랖이 넓다’고 간혹 오해를 하는 이도 있겠지요. 하지만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오지랖은 쓸데없는 간섭이나 참견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향한 다정하고 지극한 관심이며 사랑이라는 것을요. 어떤 문제 앞에서도 주저 없이 가방부터 열고 보는 이타적인 오지랖입니다. 누가 이런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때그때 가던 길을 멈춰 문제를 해결한 뒤 웃으며 손을 흔드는, 참으로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납니다. 누구에게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은 느닷없이 들이닥치지요. 평소에 대비하고 조심한다 하더라도 그 피해를 비켜가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크든 작든 그 후유증은 오래 남아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흔들어놓기도 합니다. 가까운 듯 먼 듯, 있는 듯 없는 듯,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캄캄한 밤 골목을 올라갈 때 만나는 가로등처럼, 사방이 콱 막혔을 때 내밀어주는 따뜻한 손처럼.
열린 마음으로 둘러보면 대개는 서로가 서로를 살리고 있습니다. 다만 눈치채지 못하거나 짐짓 모르는 척할 뿐이지요. 바람이나 햇살 아래 반짝이는 돌멩이들, 그들 사이에 묵묵히 자리 잡은 풀꽃들, 서로 기대고 받아주며 벗인 듯 책인 듯 상대를 빛나게 한 지킴이들 아니겠는지요. 울음으로든 웃음으로든, 아니 그 무엇으로든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루만져주었을 것입니다. 힘들었겠다고, 좀 기대라고, 쉬어가라고, 오직 너의 방향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고.
“몸 슬쩍 마음 슬쩍/언제든 밀기만 해// 너를 위한 방향으로/문이 되어 기다릴게// 자물통 다 열어 놓고/붉은 심장 켜놓고” -권애숙 시조 ‘비상구’ 전문-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 믿고 문을 밀 수 있다면 더없는 축복일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 또한 위급한 누군가를 향해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둔 채 서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일까요.
그동안 우리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 빠져 헤매기도 하고, 따뜻한 손을 만나 출구를 찾기도 했을 것입니다.
눈여겨보면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만큼이나 다양한 비상구들이 있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오면 언제든 달려와도 좋다고, 마음의 불 밝게 켜놓은 채 지친 발길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무지개, 그것도 쌍무지개라니. 한동안 몸도 마음도 내 것이 아닌 듯 앓고 있던 때였습니다. 도시의 빌딩 위로 둥글게 떠 있는 무지개다리, 그 위로 미끄럼을 타는 동안 처져있던 심신이 맑고 가볍게 정화되었습니다. 기분이 환해졌습니다. 비 다녀간 것도, 쌍무지개가 뜬 것도,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마음도 마른 지상의 외롭고 아픈 이들을 적셔준 비상구가 아니었을까요. 어디에선가 부은 두 다리 두드리며 묵묵히 세상을 지켜주는 당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