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의 시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 수업은 우리 학과 전공필수 수업이라 중요한 과목인데, 강의 시간이 점심시간 직후여서 학생들의 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버거운 미션으로 느껴지는 수업이었다. 중요한 내용인데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것 같으면 안타까운 마음에 소위 말하는 ‘오버’를 하게 된다. 그 날 그 사건도 그렇게 일어났다. 수업내용이 심리실험설계와 통계분석에 관한 내용이어서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은 어려워하는 눈치였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딴청을 피우거나 졸고 있었다. 그래서 분위기를 반전한답시고, 내뱉은 말이 “지난 주말 잘 보냈어요? 뭐 했어요? 저는 18년 차 주말부부로 지내잖아요. 주말에 서울에 다녀왔습니다”였다. 이 정도만 했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불쑥 이런 말들이 연이어 나왔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간도, 체력도, 돈도. 저는 결혼 관계를 돈으로 삽니다.” 연구방법론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주말부부, 결혼 만족도, 돈으로 사는 관계 등 황당한 말폭탄을 맞은 학생들의 주의가 그 순간 아주 집중되기는 했다.
사건의 맥락은 이러했다. 그날 점심식사를 하면서 동료교수와 나눈 얘기들 중 하나가 주말부부로 지내느라 교통비가 너무 많이 들어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한 번씩 주위 사람들에게 “나 KTX 비로 1억 쓴 여자야”라고 농담처럼 말하는데, 사실이다. 결혼 후 그간 지출한 생활비 중 기차비가 1억 원을 넘었다. 그 얘기를 들은 동료교수가 놀라면서 깔깔 웃어서, 이 얘기가 주의를 환기시키는 소재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금액 자체를 수업시간에 언급하는 건 아니다 싶어서, “결혼 관계를 돈으로 산다”는 황당한 말이 나왔나보다.
그 사건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수업시간에 그런 말을 뱉은 직후부터 ‘도대체 내가 이런 얘길 왜 했을까’라는 후회에 학생들이 아니라 내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수업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와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으며,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한 번씩 그 일이 떠올라 무척 괴롭다. 어이없는 말을, 그것도 수업시간에 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이후 느껴지는 당혹감과 후회 등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나서 말 그대로 ‘이불 킥’을 하며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남들보다는 조금 더 있으니,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심리학 지식의 도움을 받아 본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감정을 경험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기쁘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 화가 나며, 소중한 것을 잃으면 슬프다. 감정은 순간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가움의 기쁨이 행복감을 주기도 하고, 화를 낸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며, 슬픔에 빠져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일차 정서(primary emotion)와 이차 정서(secondary emotion)다.
일차 정서는 기본 정서라고도 불리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보이는 기쁨 분노 슬픔 공포 등의 정서로 즉각적인 반응을 초래한다. 이에 반해 이차 정서는 인지발달에 수반되는 정서로, 일반적으로 생후 2년 이후 나타나는 수치심 죄책감 부러움 자부심 후회 당혹감 등 정서에 대한 반응이나 해석으로 형성되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 가족에게 불같이 화를 낸 뒤 ‘그냥 참을 걸. 날 위해주는 가족에게 화를 내지 말았어야 해’라고 자책한다면, 분노라는 일차 감정 위에 죄책감이라는 이차 감정이 쌓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정서조절이다. 심리학자 제임스 그로스는 정서가 발생하는 과정의 여러 단계(상황선택, 상황수정, 주의분산, 인지 재평가)에서 조절할 수 있다. 이런 정서조절 전략들 중 ‘이미 엎질러진 물’의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인지 재평가이다. 발표를 앞두고 높은 불안감에 심장이 빠르게 뛸 때, 이를 ‘실패할 징조’라기보다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몸이 준비하는 ‘적응과정’이라고 달리 해석하는 것이 불안 조절에 효과적일 수 있다. 나의 이 당혹감과 후회는 어떻게 할까? 엄청나게 부절적한 언행이라기보다는 학생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려는 교수의 노력 정도로 해석하면 조금 나아지려나?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