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  |   입력 : 2026-10-25 18:45:58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프랑스 와인 문명 박물관.
사람들은 왜 한 병의 와인에 마음을 빼앗기는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다큐멘터리 영화 ‘Red Obsession’을 보기를 권하고 싶다. 영화는 프랑스 보르도의 포도밭에서 시작해 중국의 화려한 와인 시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묻는다. 사람들은 왜 한 병의 와인에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는가? 처음에는 나도 그 답이 ‘맛’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포도, 좋은 토양, 오랜 숙성, 뛰어난 양조 기술.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조금 다른 답이 보인다.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마시고 있었다. 보르도의 오래된 샤토.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가문의 이름. 한정된 포도밭에서 만들어지는 적은 양의 와인. 어느 해의 햇빛과 비, 바람이 다시는 똑같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름을 소유한다는 것에서 오는 특별한 감정. 그래서 어떤 와인은 포도보다 이름이 먼저 기억된다.

영화 속 중국의 부유층이 보르도 와인을 앞다퉈 사들이는 모습은 한 시대의 욕망을 보여준다. 라피트, 마고, 라투르 같은 이름은 단순한 와인이 아니라 성공과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에게 와인은 마시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상품이 아니었다. 특별한 와인을 소유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그 이름이 가진 세계에 속한다는 감정까지 구매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와인의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맛을 경험하기 위해 와인을 사지만, 때로는 맛을 경험하기도 전에 그 이름에 매료된다.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와인에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아직 열어보지 않은 병에서 특별한 가치를 느낀다. 와인의 가격에는 품질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도 반영되어 있다. 오랜 역사와 명성, 제한된 생산량, 평론가의 평가, 시장의 기대가 한데 모이면 와인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그리고 그 브랜드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 속에서 더욱 강력한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유명한 와인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만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들은 유명한 이름을 좇는 데서 벗어나 생산자를 알고, 포도밭을 이해하고, 와인을 만든 사람의 철학을 찾기 시작한다. 소유의 욕망이 이해의 즐거움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오늘날 한국 와인 시장의 모습을 생각한다. 이제 좋은 와인을 찾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와인이 우리 식탁에 오르고, 소비자의 지식과 취향도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와인 수입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좋은 와인과 사랑받는 와인 사이에는 이야기와 경험, 그리고 신뢰가 존재한다. 마케팅이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더 많이 사게 만드는 기술만은 아니다. 제품 안에 담긴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해할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좋은 와인을 발견하고, 생산자의 진정성을 이해하며, 소비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그 가치를 느끼도록 돕는 것. 그것이 수입사가 만들어야 할 경쟁력이다. 와인을 오래 마시다 보면 처음에는 평범했던 한 병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순간을 만난다. 처음 마셨던 와인, 오랫동안 기다려 만난 와인, 인생의 중요한 날에 열었던 한 병이 그렇다. 어느 순간 와인의 품종이나 점수보다 누구와 어디에서 마셨는지가 더 선명하게 남는다. 결국 와인의 가격은 포도밭에서 결정되지만, 와인의 가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완성된다.

‘Red Obsession’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질문도 바로 이것이다. “좋은 와인인가?” 그 질문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은 왜 이 와인을 기억해야 하는가?” 어쩌면 앞으로의 와인 사업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좋은 와인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좋은 와인의 이야기를 만들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 이름을 남기는 회사로. 한병의 와인은 포도밭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 와인의 진짜 가치는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알아보고,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순간 완성된다. 좋은 와인은 포도밭에서 만들어지지만, 사랑받는 와인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완성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올해 임시·일용근로자 31년來 최소…40세 이상에 감소 집중
  2. 2부산항 인근에 머물고 있는 ‘부캉이’ 이모티콘도 나왔다
  3. 3HD현대중공업 기본급 12만 원 인상 골자 올해 임단협 2차 잠정합의안 마련
  4. 4CNN,“서울이 뉴욕이면 부산은 LA”…부산 조명
  5. 5[속보]‘부캉이’ 이틀 연속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서 관측
  6. 6‘부캉이’ 수로 떠난 날 북항 기름 유출 원인은 유조선
  7. 7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26일 아침까지 이어져
  8. 8중학생이 소화기로 진화 시도…부산 스터디카페서 불
  9. 9부산에서 광저우·샤먼으로 가는 직항 하늘길 처음 열렸다
  10. 10[속보] 한동훈 “오세훈 무죄 판결에 참 다행스럽다 생각”
  1. 1[속보] 한동훈 “오세훈 무죄 판결에 참 다행스럽다 생각”
  2. 2‘YS 오른팔’ 故최형우 빈소 조문한 김민석 “여야 넘어 성찰”
  3. 3법무장관 후보 검찰출신 박균택·양부남 2인 압축
  4. 4김정은, 중국 6·25참전기념관서 “조중친선 영원히 계승”
  5. 5김정은 방중, 북중혈맹 과시, 경제협력 확대에 무게
  6. 6법무장관 박균택·양부남 유력, 野 "李 죄 지우기 인선이냐"(종합)
  7. 7[2026 국감 브리핑] 정동만 “부산에 금융·해양 공공기관 집중 배치해야”
  8. 8울산 동구의회 의원 내년 월정수당 15% 인상
  9. 9조국 “민주당 내부 권력투쟁에 사법개혁 적기 놓쳐”
  10. 10[2026 국감 브리핑] 이헌승 “재생에너지 확대로 기후환경 전기요금 반영 억눌러”
  1. 1올해 임시·일용근로자 31년來 최소…40세 이상에 감소 집중
  2. 2CNN,“서울이 뉴욕이면 부산은 LA”…부산 조명
  3. 3[속보]‘부캉이’ 이틀 연속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서 관측
  4. 4부산에서 광저우·샤먼으로 가는 직항 하늘길 처음 열렸다
  5. 5‘운명의 일주일’… 가덕도신공항 난제 풀 대책 나올까
  6. 6‘책임경영 선언’ 정용진 이마트 대표 내정…신규임원 역대 최대
  7. 7'삼성고시' 24~25일 실시, 신입사원 연말 최종 선발
  8. 8SK하이닉스, 솔리다임 상장 중단…중복상장 논란에 주주 반발
  9. 9‘가상자산 과세’ 또 유예될 듯…당정 거쳐 결론 전망
  10. 10국회 재경위 "종부세 개편 땐 임차인 세부담↑·수도권 집중 심화"
  1. 1부산항 인근에 머물고 있는 ‘부캉이’ 이모티콘도 나왔다
  2. 2HD현대중공업 기본급 12만 원 인상 골자 올해 임단협 2차 잠정합의안 마련
  3. 3‘부캉이’ 수로 떠난 날 북항 기름 유출 원인은 유조선
  4. 4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26일 아침까지 이어져
  5. 5중학생이 소화기로 진화 시도…부산 스터디카페서 불
  6. 6경기 안성 저수지 낚시터서 초등학생 물에 빠져 숨져
  7. 7창원 휴대전화 부품업체서 40대, 낙하물 맞아 숨져
  8. 8태풍 ‘참피’ 영향 부산 이틀 동안 112㎜ 비…주택 담장 무너져
  9. 9프로야구 입장권 부정구매 후 최대 12배 웃돈 받고 되팔아
  10. 10'시장 캠프·인수위 출신' 창원시 산하기관장 후보 4명 청문 줄줄이
  1. 1태풍 ‘참피’영향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취소
  2. 2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3. 3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4. 4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5. 5‘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6. 6‘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7. 7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8. 8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9. 9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10. 10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if, 손아섭
교육이라는 희망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기초의회 의정비 증액,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특별감찰관 부활, 임명보다 실질적 감찰이 중요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이불 킥’의 순간에 도움 될 심리학 지식 한 스푼
문화예술의 시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