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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와인 문명 박물관. |
사람들은 왜 한 병의 와인에 마음을 빼앗기는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다큐멘터리 영화 ‘Red Obsession’을 보기를 권하고 싶다. 영화는 프랑스 보르도의 포도밭에서 시작해 중국의 화려한 와인 시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묻는다. 사람들은 왜 한 병의 와인에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는가? 처음에는 나도 그 답이 ‘맛’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포도, 좋은 토양, 오랜 숙성, 뛰어난 양조 기술.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조금 다른 답이 보인다.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마시고 있었다. 보르도의 오래된 샤토.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가문의 이름. 한정된 포도밭에서 만들어지는 적은 양의 와인. 어느 해의 햇빛과 비, 바람이 다시는 똑같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름을 소유한다는 것에서 오는 특별한 감정. 그래서 어떤 와인은 포도보다 이름이 먼저 기억된다.
영화 속 중국의 부유층이 보르도 와인을 앞다퉈 사들이는 모습은 한 시대의 욕망을 보여준다. 라피트, 마고, 라투르 같은 이름은 단순한 와인이 아니라 성공과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에게 와인은 마시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상품이 아니었다. 특별한 와인을 소유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그 이름이 가진 세계에 속한다는 감정까지 구매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와인의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맛을 경험하기 위해 와인을 사지만, 때로는 맛을 경험하기도 전에 그 이름에 매료된다.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와인에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아직 열어보지 않은 병에서 특별한 가치를 느낀다. 와인의 가격에는 품질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도 반영되어 있다. 오랜 역사와 명성, 제한된 생산량, 평론가의 평가, 시장의 기대가 한데 모이면 와인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그리고 그 브랜드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 속에서 더욱 강력한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유명한 와인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만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들은 유명한 이름을 좇는 데서 벗어나 생산자를 알고, 포도밭을 이해하고, 와인을 만든 사람의 철학을 찾기 시작한다. 소유의 욕망이 이해의 즐거움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오늘날 한국 와인 시장의 모습을 생각한다. 이제 좋은 와인을 찾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와인이 우리 식탁에 오르고, 소비자의 지식과 취향도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와인 수입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좋은 와인과 사랑받는 와인 사이에는 이야기와 경험, 그리고 신뢰가 존재한다. 마케팅이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더 많이 사게 만드는 기술만은 아니다. 제품 안에 담긴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해할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좋은 와인을 발견하고, 생산자의 진정성을 이해하며, 소비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그 가치를 느끼도록 돕는 것. 그것이 수입사가 만들어야 할 경쟁력이다. 와인을 오래 마시다 보면 처음에는 평범했던 한 병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순간을 만난다. 처음 마셨던 와인, 오랫동안 기다려 만난 와인, 인생의 중요한 날에 열었던 한 병이 그렇다. 어느 순간 와인의 품종이나 점수보다 누구와 어디에서 마셨는지가 더 선명하게 남는다. 결국 와인의 가격은 포도밭에서 결정되지만, 와인의 가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완성된다.
‘Red Obsession’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질문도 바로 이것이다. “좋은 와인인가?” 그 질문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은 왜 이 와인을 기억해야 하는가?” 어쩌면 앞으로의 와인 사업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좋은 와인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좋은 와인의 이야기를 만들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 이름을 남기는 회사로. 한병의 와인은 포도밭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 와인의 진짜 가치는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알아보고,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순간 완성된다. 좋은 와인은 포도밭에서 만들어지지만, 사랑받는 와인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