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한다. 그동안 탄핵 타령을 하다 국조로 선회한 이유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풍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국조는 곤두박질치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의 반전 돌파구를 진영 밖 공동의 적을 만들어 해소하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천지 집단 입당 문제 등 내홍으로 흩어진 진영 결집을 위해 ‘눈엣가시’였던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것이다. 대선 직전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 환송에 쌓였던 앙금이 임기 내내 대법원 흔들기로 표출된 데 이어 강성 지지층의 불만 배출구로 대법원장을 타깃으로 설정했다는 시각이다.
지난달 22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2심 무죄 선고가 도화선이 됐다. 민주당 강경파는 ‘조희대 탓’이라며 탄핵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무죄 판결과 대법원장 간에 어떠한 인과 관계도 없음에도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공당은 물론 집권 여당의 자격마저 의심스러운 행태다. 자당 송영길 의원과 노웅래 전 의원의 돈 봉투 사건이 2심에서 무죄 판결로 뒤집어질 때도 대법원장은 조희대였다. 심지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2심 무죄 판결 당시에도 대법원장은 같은 사람이다.
민주당이 내세운 국조의 이유는 대법관 재제청 거부와 업무추진비 등이다. 대법관 재제청 사태는 헌법에 규정된 삼권분립에 입각한 대법원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에 반한다. 대통령이 특정인에 대한 ‘지명권’을 행사하려는 데서 문제가 촉발됐다는 시각이 많다.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이 문제 삼았던 1억 원이 넘는 와인 구입비도 알고 보니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체 예산의 4분의 3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조 대법원장 때는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것과 달리 김 대법원장 때는 값비싼 와인 전문점에서 구입한 것으로 드러나 조 대법원장의 검소함만 부각시킨 해프닝이 됐다.
민주당이 정작 국조와 특검을 추진해야 할 대상은 ‘증시 참사’를 불러온 단일종목 ETF(상장지수펀드)와 연기금 리밸런싱(자산 비중 재조정) 유예 문제다. 김승원 법무장관 후보자 인선을 둘러싼 논란도 밝혀야 한다.
정부가 졸속 추진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ETF 상장의 후폭풍으로 6조3000억 원에 달하는 개인 투자자(개미)의 손실과 180조 원이 넘는 연기금 수익 증발 등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변동성을 키운 시장은 신뢰를 잃었다.
국민은 책임 소재를 묻고 있지만 정부는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18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ETF 사태와 관련해 “누군가는 결정했겠죠”라는 상식 밖의 답변을 내놨다. 지난달 국감에서도 이찬진 금감원장은 “일정을 서둘렀다”며 날림 심사 의혹을 인정했을 뿐 정책 결정의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ETF 사태와 연기금 리밸런싱 유예는 6·3 지방선거를 의식한 인위적 증시 부양책이라는 의혹이 많다. 특히 통상 1년 뒤 공개하는 연기금 리밸런싱 회의록을 예외 규정을 들어 ‘4년 봉인’이라는 꼼수를 부린 점에서 의혹은 점차 확신으로 변한다. 국민연금법에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안건’은 기금위 의결로 최대 4년간 비공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악용한 것이다. 내년 1월 공개되어야 할 회의록은 2030년 1월에야 리밸런싱 사태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증시 참사는 ‘정치적 배임’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형법상 배임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여 자신 또는 제3자에게 이익을 취하게 하고, 이로 인해 사무를 맡긴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는 범죄를 말한다.
단일종목 ETF 졸속 승인과 연기금 리밸런싱 유예는 형법상 배임과 흡사한 구조다. 연기금 운용을 맡은 국민연금공단 내 기금운용본부가 제3자(정권)에게 이익(지방선거 득표)을 취하게 하기 위해 사무를 맡긴 사람(국민)에게 손해(연기금 손실)를 입힌 것과 유사하다. 단일종목 ETF 역시 금융당국이 정권의 지방선거 표심이라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책을 졸속으로 결정함으로써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 것과 같다.
‘정치적 배임’에 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이 없이 넘어간다면 이런 일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국민의 노후자산이 정권의 쌈짓돈이 될 수는 없다. 국민 피해가 예상됨에도 정치적 목적으로 인위적인 증시 부양을 하는 행위 역시 반드시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국조는 물론 특검을 통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국조는 이럴 때 하는 것이다.
윤정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