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차가워지고 옷깃은 여며지지만, 이맘때면 오히려 주변의 온기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이 풍경은 언제보아도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패션산업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느낀 것은,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사회에도 온기를 더해야하는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연말까지 바쁘게 달려온 걸음을 잠시 멈추고, 곁에 있는 이웃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
올해도 결코 쉬운 한 해는 아니었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가계와 기업 모두 허리띠를 졸라맸고,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누군가에게 나눔을 이야기하는 일이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어려울수록 힘든 이웃의 겨울은 더 길고 혹독해지는 반면, 나눔의 손길은 오히려 먼저 움츠러드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그렇기에 이런 때일수록 기부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십시일반(十匙一飯)’이다. 열 사람이 밥 한 숟가락씩 덜어내면 한 사람이 먹을 밥 한 그릇이 된다는 뜻으로, 여럿이 힘을 모으면 한 사람을 돕기는 어렵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기부의 본질을 이보다 잘 설명하는 말은 드물다. 기부는 넉넉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어서 하는 것이다. 크기가 작더라도 그 마음이 모이면 누군가의 겨울을 지탱하는 든든한 힘이 된다.
기업에 기부는 어떤 의미일까. 과거에는 이익이 난 뒤 그 여유분을 나누는 ‘사회공헌 활동’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이 사회 속에서 신뢰를 얻는 방식 그 자체가 됐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품질과 가격뿐만 아니라, 그 기업이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함께 살핀다. 지속가능한 경영이 환경과 투명한 경영만을 말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책임을 얼마나 꾸준히 실천하는가가 기업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되었음은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의류를 만드는 기업이기에 나눔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옷은 사람의 온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하는 물건이다. 한겨울 추위 앞에서 옷 한 벌은 유행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지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패션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산업이라면, 그 아름다움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누군가의 곁에 따뜻함으로 닿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나눔은 받는 이만을 위한 일도 아니다. ‘적선여경(積善餘慶)’,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뒤따른다는 말처럼, 나눔은 주는 이와 공동체를 함께 단단하게 만든다. 세정은 50년 전 부산 중구 중앙시장의 작은 가게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지역 고객들의 사랑과 신뢰가 없었다면 오늘의 세정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역사회에 이를 되돌려 드리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기업이 마땅히 지고 가야 할 책무라고 믿는다.
다만 나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크기보다 지속성이다. 한 번의 큰 기부보다, 해마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작은 나눔이 더 큰 신뢰를 만든다. 기부와 나눔이 연말 한철의 행사로 그치지 않고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나눔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기업의 기부가 임직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지고, 다시 지역사회 전체의 나눔 문화로 퍼져 나가는 선순환이 그래서 중요하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어려운 시기마다 이웃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위기 속에서 오히려 나눔과 기부가 더 큰 연대의 힘으로 이어져온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경제의 흐름이 아무리 빠르게 변하고 어려워져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는 가치로 남아야 한다. 그 마음이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정은 앞으로도 부산과 지역사회의 든든한 이웃으로서 나눔의 걸음을 이어가겠다.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 꾸준히 실천하고, 한 해의 숫자보다 오래도록 남는 신뢰를 쌓아가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 우리의 작은 숟가락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한 끼의 밥이 되고, 따뜻한 한 벌의 옷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내년에도 그 길을 걸어가겠다.
이와 함께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그간 기업을 이끌며 쉼 없이 달려오신 경영인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경제를 지탱하고, 이웃을 위한 나눔과 사회적책임을 실천해주신 모든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올해도 추운 겨울, 지역의 모든 기업과 이웃들이 서로의 곁을 따뜻하게 지키며 한 해를 마무리하길 바란다. 점점 더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흐름 속에서도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고, 지역사회에 희망의 온기를 더하고, 더불어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