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황정수의 그림산책] 양달석의 ‘목동’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6-11-08 18:47:20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양달석 작가의 ‘목동’.
2년 동안의 휴관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연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재개관전으로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 1945-1953’가 열리고 있다. 전시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는 서양화가 양달석(梁達錫, 1908-1984)이다. 그는 초기에는 입체파 등 전위적인 사조를 받아들여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으나, 후기에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이 때문에 화단에서는 근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진보적인 작가라는 평가와, 비슷한 소재를 반복한 대중적·상업적 화가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특히 소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시대의 현실을 외면한 그림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가 축적되면서 그의 풍경화가 단순한 서정성의 부산물만은 아니라는 새로운 평가를 얻고 있다.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난 양달석의 삶은 그림 속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고단한 현실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산과 들에서 소를 먹이며 자랐고, 통영공립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거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하면서 화단에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유학을 결심하고 도쿄의 데이코쿠미술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신문 배달과 초상화 그리기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입체파와 야수파 등 서구의 전위미술을 공부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문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귀국했다.

미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귀국 이후에도 식지 않았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일본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일본에서 발간된 미술 잡지를 통해 최신 사조를 접하고 방학이면 도쿄를 찾아 관련 정보를 얻었다. 특히 당시 일본에서 주목받던 초현실주의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도쿄를 오가며 일본 초현실주의의 개척자였던 후쿠자와 이치로(福澤一郞, 1898-1992)의 화숙에서 초현실주의 미술을 익혔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1954년에 그린 ‘목동’은 양달석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작품이다. 화사한 봄날 산 중에 어린 세 아이가 세상 걱정을 잊은 듯 있고, 개중 한 소년은 피리를 불고 있다. 그 곁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부드러운 산등성이는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근하다. 서양화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서 깊숙이 자리한 따뜻한 감성을 담아낸 이 풍경은 그가 살아온 비극적인 현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시대에 그려진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은 절망에 빠진 세상을 향해 예술이 건넬 수 있는 위로와 희망을 보여준다.

양달석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전쟁의 비극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그림들과 달리, 상처와 파괴가 미치지 않는 순수한 세상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현실에 맞섰다는 점에 있다. 이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인간다움과 존엄성이 사라져 가던 시절에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예술적 의지로 읽을 수 있다. 시대의 고통을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그의 그림은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하고 다정한 평온과 희망을 전하며, 예술이 지닌 위로의 힘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3. 3'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4. 4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5. 5[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6. 6'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7. 7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8. 8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9. 9“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10. 10[속보] 트럼프 “UFC 회장에 백악관 대변인 제안, 광기 어린 좌파로부터 우리 지켜야”
  1. 1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2. 2오세훈, 증시 폭락 직격... “국민연금으로 지방 선거용 주식도박"
  3. 3[속보]이용철 법무장관 후보, 청문 준비 돌입…12일 준비단 첫 출근
  4. 4장동혁 “중도확장, 말로하는 연대·통합으로 되는 것 아냐”
  5. 5서영교 “조작기소 특검법안 ‘대통령 이해충돌’ 논란은 헛소리”
  6. 6임광현 “소방재원 확보 위해 미래대응기금 활용, 국회와 긴밀 협의”
  7. 7[속보]당정 “소방 필수투자에 2조원 재정지원…지방부담 완화 검토”
  8. 8민주 “정부에 ‘실거주 구분 없이 종부세 공제 14억’ 강력 요구”
  9. 9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10. 10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3. 3'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4. 4“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5. 5녹색전환 핵심 ‘전기화’, 기업10곳 중 3곳만…“인센티브 필요”
  6. 6올해 3분기 상용직 증가분 75%는 60세 이상…20·30대는 감소
  7. 7식품·외식 분야에서 ‘웰니스 소비’ 앞으로도 지속된다
  8. 8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9일 개막…"K-GX 전략 소개"
  9. 9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10. 10[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1. 1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2. 2[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3. 3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4. 4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5. 5정풍송 노래비 건립 재추진 움직임에 밀양시의회 “반대”
  6. 6부산서 부탄가스 난로 폭발 사고... 2명 화상
  7. 7진보당 "기본소득 8개 군 배제는 직권남용, 도지사 고발"…도 "하자 없어"
  8. 8[속보] 검찰총장 인선 절차 연기... 후보 추천위 이달 중 개최 예정
  9. 9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10. 10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1. 1‘승률 98.6%’ 배드민턴 안세영,사상 첫 2시즌 연속 11승
  2. 2삼성,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 탈환…통산 9번째 우승
  3. 3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4. 4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5. 5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6. 6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7. 7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8. 8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9. 9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10. 10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지방의회 아래 선출직 주민의회…술집 개업 등 찬반 권한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살아남는 것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초등 입학생 30만 붕괴
공공재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감기약을 먹어도 감기가 낫지 않는 이유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북항 돔 아레나, BPA·부산시 대승적 결단 필요하다
위헌 소지 조작기소특검법…역풍 피할 수 있나
세상읽기 [전체보기]
동맹 속의 자율성, 핵자강과 전작권의 미래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양달석의 ‘목동’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