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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감기약을 먹어도 감기가 낫지 않는 이유

정승규 약사

  • 정승규 약사
  •  |   입력 : 2026-11-08 18:45:0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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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님, 감기약을 사흘이나 먹었는데 왜 아직도 안 낫나요?”

찬 바람이 부는 이 즈음 약국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콧물이 흐르고 목이 따끔거리면 감기약부터 찾는다. 약을 먹고 푹 자면 다음 날은 개운하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사흘째 코를 훌쩍이면 슬슬 의심이 든다. 암세포를 정밀 겨냥하는 표적항암제까지 나왔는데, 왜 흔한 감기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할까.

‘감기약’이라는 이름부터 살펴보자. 이름만 들으면 감기를 낫게 하는 약 같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감기약은 대부분 증상을 덜어 주는 약이다. 감기약은 비를 멈추게 하지는 못해도 비를 피하게 해 주는 우산과 같다. 사람들은 감기의 원인을 모르던 시절부터 열과 통증을 줄일 방법을 찾았다. 1899년 독일 바이엘이 출시한 아스피린도 감기의 원인을 없애지는 못했다. 대신 열과 통증을 가라앉혀 아픈 시간을 견디게 했다. 이후 콧물을 줄이는 항히스타민제와 코막힘을 완화하는 약들이 더해졌다. 오늘날 종합감기약은 여러 증상을 줄이는 성분을 한 데 모은 것이다.

감기의 대표적인 원인인 리노바이러스만 해도 수많은 유형이 존재한다. 게다가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한두 종류가 아니다. 다양한 바이러스에 두루 효과를 내는 치료제를 개발하기 어려운 이유다. 바이러스가 코와 목에 들어오면 면역계가 대응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점막이 붓고 분비물이 늘어나 코가 막히고 콧물이 흐른다. 감기에 걸렸을 때 겪는 고통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이를 물리치려는 우리 몸의 면역반응에서도 생긴다.

감기약은 이런 불편함을 줄인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열과 통증을 낮추고, 일부 항히스타민제는 제한적이지만 콧물과 재채기를 덜어 준다. 코막힘을 완화하는 일부 약은 코점막의 혈관을 수축시켜 부기를 가라앉힌다. 기침을 억제하는 약과 가래 배출을 돕는 약도 있다. 효과는 약마다 다르지만, 증상에 맞게 사용하면 일상의 불편을 덜 수 있다. 다만, 코가 뚫리고 열이 내렸다고 바이러스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증상이 가벼워지는 것과 감염에서 회복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항생제를 먹으면 더 빨리 낫지 않나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항생제는 세균을 공격하는 약이지 바이러스를 없애는 약이 아니다. 오히려 설사나 발진 같은 부작용이 생기고 항생제 내성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감기는 대개 일주일 안팎에 호전되지만, 증상이 10일 이상 이어지거나 기침이 2주 넘게 나기도 한다. 사흘 만에 낫지 않았다고 무조건 약을 바꿀 일은 아니다. 충분히 쉬고 물을 마시면서 견디기 힘든 증상에 맞춰 약을 고르는 편이 낫다. 콧물만 나는데 기침약까지 챙길 필요는 없다. 약을 선택할 때는 “한 번에 낫는 센 약 주세요!”보다 어떤 증상이 가장 불편한지를 알려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약을 많이 먹는다고 빨리 낫는 것도 아니다. 종합감기약과 해열진통제에 아세트아미노펜이 함께 들어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하루 최대 복용량을 초과해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제품명이 달라도 성분은 같을 수 있으니 먹기 전에 확인해야 한다. 고혈압이면 슈도에페드린 성분의 코막힘약에 주의하고, 졸리는 약을 먹었다면 운전을 피해야 한다. 복용 중인 약을 약사에게 알려 주면 중복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숨이 차거나 열이 나흘 넘게 이어질 때, 열흘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거나 나아지다가 다시 심해질 때는 진료가 필요하다. 감기처럼 시작하는 독감이나 코로나 19는 증상이 비슷해도 구별이 필요하며, 환자에 따라 항바이러스제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약국에서 감기약을 건네며 “무리하지 말고 푹 쉬세요”라고 덧붙이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감기약은 몸이 회복하는 시간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내도록 돕는다. 병을 단번에 없애는 것만이 약의 역할은 아니다. 기침으로 뒤척이던 밤에 단잠을 자고, 목이 아파 미뤘던 식사를 따뜻한 한 끼로 채울 수 있도록 돕는 것. 아픈 하루를 조금 더 견딜 만하게 만드는 데에도 약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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