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핵심 국방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7년 국방예산안에는 전작권 전환과 자주국방을 위한 예산으로 12조1744억 원이 편성됐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전환의 새로운 기준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불거졌다. 국방부는 조건을 계속 바꾸면 전환이 불가능하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이 논쟁의 본질은 전환 시기가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 전쟁수행 수단으로 고도화하는 북핵시대에 대한민국이 국가의 생존과 전쟁의 결과를 얼마나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느냐는 문제다. 이를 이해하려면 프랑스의 샤를 드골이 걸었던 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50년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한 것은 주권 포기가 아니라 국가생존을 위한 전략적 결단이었다. 이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과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를 거쳐 오늘의 지휘체계가 형성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권한의 형식적 환수를 넘어 실질적으로 국가안보를 주도할 역량을 갖추었느냐는 것이다.
드골은 소련의 핵능력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자 미국이 자국의 핵보복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프랑스를 방어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동맹국의 선의만으로 국가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프랑스는 독자적인 핵전력을 구축해 1960년 첫 핵실험을 실시했고, 1966년에는 나토 통합군사령부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나토를 탈퇴하거나 미국과의 동맹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독자적인 억제력을 바탕으로 동맹 안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드골에게 핵무장은 단순히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의 최후 생존을 좌우하는 전략적 판단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프랑스는 1960년 첫 핵실험에 성공하며 독자적인 핵억제력 구축에 나섰고, 이를 토대로 1966년 나토 통합군사령부에서 철수하는 군사적 자율성을 선택했다. 이는 동맹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핵억제력을 바탕으로 자국 군대의 지휘권과 전략적 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대한민국도 이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전작권 전환 조건은 한번 충족하면 끝나는 고정된 기준이 아니다. 주변 강대국의 군사력과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요구되는 역량도 높아질 수 있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말하듯, 같은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전작권 전환 조건을 충족하는 일 자체가 끝없는 과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전작권 전환의 제도적 절차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국가생존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독자적 억제역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가 핵자강이다. 핵자강은 한미동맹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동맹의 억제력을 보완하고 대한민국의 전략적 선택공간을 넓히는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통제된 핵능력’과 ‘선택적 핵확산’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군사력과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할 추가 억제역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중요한 전략적 과제다. 엘브리지 콜비가 강조해 온 거부전략과 동맹국의 부담 분담 논의도 이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거부전략은 적이 무력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좌절시킬 수 있는 방어역량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둔다. 다만 이는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핵자강의 다양한 선택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법 및 한미동맹에 미칠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 역시 정치 일정에 맞춰 서두르거나 막연한 우려로 미룰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한국군의 연합방위 주도능력, 한미 양국의 지휘·지원체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드골의 교훈은 명확하다. 동맹은 국가안보의 중요한 자산이지만 국가의 운명을 동맹국의 의지에만 맡길 수는 없다. 핵자강과 전작권 전환은 북핵시대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율성과 국가생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두 축이다. 동맹은 지키되, 국가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