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인디애나대 대학원

나는 지난 9월부터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부산대를 졸업한 한국 유학생이다. 여기 살면서 내 나라에 대해 그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알았더라도 깊이 느끼지 못했던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가장 먼저 몸으로 느낀 것은 한류 열풍이다. 한국의 모든 언론매체에서 아시아에서 부는 한류 열풍을 보도했을 때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오, 이런. 그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 그리고 우리 과에는 아시아계 학생들이 참 많다. 그들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하는 말이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든 대화를 '대장금' '풀하우스' '겨울연가' 등으로 시작한다. 드라마 보면서 한국말도 몇 마디씩 익혀서 "사랑해요" "오빠" 등을 서툴게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우리 과의 한 타이완 친구는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의 온라인쇼핑몰인 G마켓으로 접속해서는 어떤 물건을 사는 게 좋으냐고 내게 묻기도 했다.

문화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서라도 그들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덕분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나를 괜스레 우쭐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긍정적인 경험이다. 그러나 나를 슬프게 만든 뜻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한 달 전쯤 나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국제 축제에 아시안 스터디 센터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아이들을 앉혀 두고 센터 직원이 동화책을 읽어 주면, 나는 한국의 문화적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고 간단한 한국말을 가르쳐 주는 봉사활동이었다.

전혀 알지 못했던 나라의 문화들에 대해 약간이나마 자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은, 여기 인디애나주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음에도, 한국 부스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 국기는 떡하니 걸려 있는데도 말이다. 그 속뜻인즉, 여기 있는 한국사람 누구도 봉사하겠다고 자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왜 그걸 적극적으로 홍보하려 하지 않을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하는데 말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 문화를 알리기에 열심이었다. 특히 중국과 일본 코너는 다채로웠다. 중국은 경극 의상을, 일본은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도 마련해 두었다. 중국은 한자 쓰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중국음식도 팔았다. 그 와중에 한국 부스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느꼈던 허탈감이란. 한국 문화를 자랑하면서도 이럴 때 힘을 발휘 못하는 현지 한인사회와 유학생 공동체에 대해 아쉬운 마음도 솔직히 좀 들었다.

나는 미국에 올 때, 해금을 가져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다가 불고기나 잡채 등 한국 음식도 만들어 주곤 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하면 뭔가 허전하다. 한국말을 쓰지 않으면 답답하다. 그래서 sticky rice(차진 쌀)란 말을 들으면서도 유학 생활에서 한국인들끼리 붙어 다닌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를 홍보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어떻게 해서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그렇게 열심히 자신들의 문화를 홍보할 수 있었을까.

한국정부와 국민들, 해외동포사회와 유학생 등 너나 할 것 없이 조금만 더 힘을 쓰면 한류도 더욱 살찌울 수 있고, 우리 문화도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과 일본 친구들에게 주눅도 들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