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열린 선진도시'.
부산시가 추구하는 시정 목표이자 허남식 시장이 내건 도시발전 슬로건이다. 부산은 한 해 20피트 컨테이너 1100만 개 이상을 처리하는 세계 5위의 컨테이너항이며, 부족하지만 공항도 지구촌 각지를 연결하고 있다. 이쯤 되면 부산은 바다와 하늘 길을 통해 세계에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선진도시는 현재의 부산과 다소 거리가 있다. 시민들의 삶이 경제 문화적으로 풍족하고 시민의식과 각종 제도가 성숙해야 선진도시라 할 만하다. 부산은 이런 잣대에 미치지 못하니 선진도시를 시정 목표로 삼기에 충분하다. 시정의 큰 방향이 선진도시에 집중된 때문일까. 허 시장의 해양 마인드와 해양 행정은 항만 수산 종사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5일 이른 아침 허 시장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부산공동어시장을 방문했다. 업계 종사자들은 시장의 기습 방문을 전날 오후에나 알았다고 한다. 공동어시장은 서민경제의 단면을 알 수 있는 경제의 최전방이다. 허 시장은 이날 수협조합장들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과 건의를 들은 뒤 "와보니 정말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됐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부산시가 마련한 수많은 경제관련 회의도 대부분 이런 식이다.
수산업 진흥에 있어서 부산시 역할이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산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기대 이하다. 어업인들은 어획량 감소와 고유가로 인한 출어비용 증가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도 시장은 취임 100일이 훨씬 지난 12월 초에나 공동어시장을 찾아 지역 수산업의 현실을 체감했다. 수산업은 부산이 국내 어느 도시보다 발달해 있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시장은 당연히 업계가 처한 어려움을 걷어 내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우선을 둬야 하지만 여전히 후순위다.
허 시장은 수산업에 비해 항만에는 높은 관심을 보인다. 허 시장은 부산역 지하화를 통한 북항 재개발 사업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대상 부지가 좁아 부산역을 지하로 넣으면 더없이 좋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척박하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소요돼 예산이 부족한 부산시가 채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구 중구를 비롯한 원도심 재창조에도 큰 효과가 없어 보인다. 부산항만공사가 내놓은 재개발 마스터플랜대로 개발되면 매립된 바다에 고층 빌딩이 대거 들어서 원도심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부산시가 대규모 매립과 고층빌딩 건립에 반대하면서 친환경적인 개발을 유도해야 하는 주체일 수밖에 없으나 바다를 메워 육지처럼 사용하자는 안에 힘을 실어준다. 좋은 예는 부산시 도시계획이다. 이 계획에는 북항 매립규모가 28만 평으로 잡혀 있다. 이 점을 들어 용역사인 삼안은 부산시 매립면적보다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처럼 넓은 해수면을 가졌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부산항은 그렇지 못하다. 건물을 짓겠다고 넓지 않은 바다를 매립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해양 정책이 부산을 국제 해양도시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항만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경제인들은 이 같은 마스터플랜을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큰 돈 들이지 않고 현재의 해수면을 살리면서 창고를 걷어내고 우리의 얼과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물과 친수시설을 건립한 뒤 부산역과 이어주는 재개발 방안은 어떠한지 부산시에 묻고 싶다.
허 시장은 세계 물류와 금융이, 창조적 인재와 기업이 몰려드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무대로서의 부산을 만들기 위해 지역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이전 시장들도 지역 경제발전에 진력을 했지만 부산의 경제 현실은 고달프다. 가난한 도시의 행정수장인 허 시장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 경제인과 시민들은 허 시장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핵심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