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통령 어디갔나'. 요즘 시민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다. 고물가에다 주가폭락, 원·달러 환율 급등 등 이른바 '트리플 악재'가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적지않은 흠결에도 불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보고 한 표를 던졌는데 나아진 게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새 정부가 취임한 지 아직 한 달이 안됐다. 조금은 성급한 요구일 수 있다. 게다가 현재 나타난 문제들을 뜯어보면 대부분 해외발 악재들이다. 고물가의 원인이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폭등에 있고, 주가폭락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채권)로 촉발된 미국의 경기침체가 빌미를 제공했다. 환율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달러 유출이 주요인이란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더구나 이제 막 시작한 새 정부에 현재의 경제불안을 모두 전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차관으로 이어지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라인에 대해 불안해 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두 사람은 대표적인 성장론자로 알려져 있다. 새 경제팀은 이를 증명하듯 올해 경제성장목표를 6%로 내놨다. 국내외의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은 4~5%를 전망하고 있다. 심지어 3%대를 전망한 전문가도 있다.
이런 경제정책 방향을 나무랄 수는 없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목표이고, 다소 목표를 높여 잡아야 성취욕구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명박식 성장론'에 지나치게 매몰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높은 성장률을 추구하다보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당장 물가가 문제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가면서 시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요즘 출퇴근 시간에 체증이 많이 줄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밀 등 곡물가의 급등은 자장면 칼국수 라면 가격을 20~30% 올려놓았다. 그래서 쌀국수 얘기까지 나왔다. 아직 쌀값이 밀값 보다 비싸 현실성이 없긴 하지만….
환율 상승도 마찬가지다.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원·달러 환율만 급등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새 경제팀은 관망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환율 상승은 수출에는 호재라면서 즐기는 분위기다. 물론 기업들의 수출에는 호재임에 틀림없다. 전형적인 성장론자의 자세다. 정부는 환율이 1달러 당 1030원을 넘어간 뒤에야 시장 개입에 나섰다.
환율 상승이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유발,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미 고물가시대를 맞고 있는 시민들에겐 더 큰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하면 소비자물가가 0.07%포인트 오른다고 한다. 올들어 10%가량 올랐으니 소비자 물가에 0.7% 상승효과를 미치게 된다.
고도성장은 권력자의 성취 욕구를 자극하는 자극제임에 틀림없다. 또 정부의 경제팀은 최고 권력자의 의지를 뒷받침해야 할 의무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외 경제 환경과 우리의 내부 역량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97년 당시 경제수장이 펀드멘탈이 괜찮다고 한 뒤 한달 만에 IMF사태를 맞는 경험을 했다. 이번에도 새 정부 경제팀은 우리 경제의 체질은 탄탄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우리 경제가 IMF 당시와 비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민들은 이미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고물가를 견디다 못한 서민들은 자녀 학원비를 줄이고, 점심때는 값싼 식당을 찾아나선다. 직장인들은 회식을 줄이고 있고, 주부들은 알뜰 쇼핑을 위해서라면 먼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첫 인사에서 이른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 '강부자'(강남땅부자)로 상징되는 특정 계층에 대한 편중인사를 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만약 고성장을 빌미로 다시 한번 서민들의 고통을 강요한다면 '이명박'을 택한 시민들마저 등을 돌리게 될지 모른다. 서민들의 희생을 볼모로 잡아선 안된다는 얘기다.
환율을 조절하면서 물가도 생각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새 정부 경제팀이 풀어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