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도 민영화되면 수돗물 요금, 하루 14만 원'.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수돗물 괴담'의 골자다. 여러 대화방에서 이와 관련해 상수도 민영화 반대 서명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미 수만 명이 서명한 곳도 있다. 그러나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괴담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광우병 괴담과 의료보험 괴담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의료보험 민영화 방침이라는 사실에 근거해 부풀려졌듯이 수돗물 괴담 역시 정부가 제공한 자양분을 먹고 자랐다.

지난달 하순 일부 언론이 상수도 민영화 계획을 보도하자 정부는 이를 극구 부인했다. 그래 놓고 그 일주일 뒤 물산업지원법을 발표하고 이달 초 입법예고하겠다고 했다. 이 법안의 토대는 노무현 정부 말기에 나온 '물 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계획'이다. 당시 이 계획은 상수도 민영화, 물의 사유화는 안 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잠수했다. 그런데 이번에 '상수도 민영화'를 또렷이 표방하고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는 상수도 사업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외의 자, 즉 외국인과 외국법인을 포함한 민간과 공동 출자하여 상법에 의한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된 것이다. 민간자본이 51% 이상의 지분을 갖고 상수도 회사의 대주주가 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으니, 이는 곧 민영화 길을 터놓았다는 말이다.

반발여론이 확산되자 정부는 이번엔 민영화 대신 '전문화'를 내세웠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방상수도 전문기관 관리계획'이 그것이다. 전국의 상수도가 효율성이 낮아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인식이다. 이에 따라 164개 지자체별로 나뉜 상수도사업을 3~15개 권역별로 광역화해 전문기관에 관리와 운영을 맡겨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다. 서울 부산 등 7개 특별·광역시 상수도는 구조조정 후 공사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정부가 말하는 전문기관이란 수자원공사 같은 공기업뿐 아니라 국내외 민간기업도 포함된다. 말만 '전문화'일 뿐 사실상 준민영화로서 완전 민영화를 위한 수순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발표한 법안과 계획을 종합하면 상수도 민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전문화 주장은 민영화에 대한 반발을 비켜가고자 하는 꼼수에 다름 아니다. 물산업을 전문화시켜 세계적인 물기업을 육성한다는 정부의 목표가 이를 방증한다. 또 관리·운영권만 주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미국의 벡텔 같은 상수도 기업도 처음엔 상수도 전반의 소유보다는 관리·운영권을 맡으면서 시작한다. 상수도 산업은 그 특성상 소유권을 넘기지 않고 위탁관리라는 새로운 형태로 민영화·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러니 '수돗물 괴담' 중에 정부가 상수도를 민영화하려 한다는 내용은 틀린 말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상수도가 민영화되면 어떻게 될까. 정부의 주장대로 효율을 극대화해 국민들의 부담 증가 없이 적자를 해소하고 세계적인 물 전문기업으로 육성할 수 있을까. 이를 믿기에는 심각한 피해 사례가 너무나 많다.

IMF의 민영화 압력으로 2000년 미국 벡텔사에 상수도 운영권을 넘겨줬던 볼리비아는 물값 폭등으로 국민들이 봉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대통령이 사임하고 벡텔사가 물러났다. 우루과이는 민영화 이후 물값이 10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6배나 인상됐다. 볼리비아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은 막대한 위약금을 주고 다시 국영화했고, 미국에서도 여러 주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상수도를 민영화한 나라는 대부분 물값 폭등과 서비스 저하, 농촌을 비롯한 저소득층에 대한 물공급 중단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한다. 원가 이하의 요금으로 물을 공급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돗물이 민영화되면 요금이 대폭 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값이 없어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서민들이 속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국민에게 물을 공급하는 데 드는 예산을 낭비라며 민영화가 만능인 양 여기는 정부의 발상이 한심하다. 민영화의 대상은 자유로운 경쟁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수돗물의 경우 상수도 업자는 독점적 지위를 갖기 때문에 소비자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누구나 공평하게 누려야 하는 공공재이자 자연재인 물을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내모는 것은 국가경영의 정도가 아니다. 물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상극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