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에 시달리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진다. 책 읽는 것도, 영화 보는 것도 귀찮고 어쩌다 신문을 들여다보면 괜히 짜증부터 난다. "자고 나도 사막 길 꿈속에도 사막 길/ 사막은 영원한 길 고달픈 나그네 길/ 낙타 등에 꿈을 싣고 사막을 걸어가면/ 황혼의 지평선에 석양도 애달파라" 고복수의 고졸한 옛노래 '사막의 한'이 그나마 정감있게 다가온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을 걷는 듯한 막막함과 절망감. 나는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자신을 돌아보며 무력감과 박탈감에 잠 못 이루는 서민들의 여름밤은 깊어간다.
솔직히 말해 서민들은 누가 장관이 되든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신문 방송에서 얼굴 사진과 함께 내보내는 고향과 출신학교, 외유내강 아니면 두주불사, 꼼꼼한 일처리와 불도저식 업무추진력 따위의 상투적인 인물 소개를 보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겠거니,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사청문회가 생중계되고 높은 양반들의 온갖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서민들의 짜증과 울화증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기 시작했다.
아, 민주주의는 우리가 피땀으로 되찾은 소중한 가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유능한 인재'들을 괴롭히고 힘없는 서민을 짜증 나게 하는 제도인가! 일 잘하는 유능한 인재면 됐지, 장관과 국세청장이 꼭 성인군자처럼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지난 대선 때부터 많이 듣던 소리다. 그런데 서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유능한 인재'들은 하나같이 법을 어기면서 위장전입을 하고 부동산 투기를 일삼으며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데도 아무런 처벌이나 불이익도 받지 않고 출세가도를 달리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정권 때는 같은 이유로 숱한 유능한 인재들을 낙마시키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서 출세하려면 서울 일류대학을 나오되 군대는 가지 않고 외국유학을 다녀오든가 고시에 합격하고 병역을 면제받아야 한다. 가급적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에 소질이 있는 여자와 결혼하고, 자녀는 일찌감치 미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한다. 정치판에 뛰어들면 줄이 긴 곳을 골라 서고 고향 선후배나 동창 인맥을 활용하여 가족을 위장취업시키든가 선거자금을 후원받는다.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자들은 '친북좌파'나 '노빠'로 몰아 임기 중에라도 내쫓는다. 혹시 이런 것이 인사청문회에 나온 '일 잘하는 유능한 인재'들의 능력은 아닐까?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에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하 나는 살겠네 태양만 비친다면 /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한대수의 텁텁한 목소리와 소박한 하모니카 소리에선 대한민국 엘리트의 출세욕을 벗어던진 자유인의 체취가 느껴진다. 서울 생활에 부대끼다가 모처럼 부산역에 내렸을 때 이마를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갯냄새 비슷한 느낌이랄까.
따지고 보면 출세나 입신양명이 무엇이란 말인가. 기껏해야 몇 년밖에 누리지 못하는 권력의 유혹이 그처럼 달콤하단 말인가. 더구나 자칫 정치판에 휩쓸려 들었다가 언제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도 일단 자리에서 물러나면 검찰과 언론의 무자비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던가. 그러니 자식에게는 출세할 생각은 접고 제 한 몸 편안하게 일생을 지내라고 당부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난세에는 욕심을 버리고 명철보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옛날 선비들은 가르쳤다. 북송의 대시인 소동파는 자식이 태어나자 장난 삼아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한다. "남들은 다 자식이 총명하길 바라지만/ 나는 총명으로 일생을 망쳤으니/ 다만 아이가 어리석고 미련하여/ 재난 없이 공경(公卿)에 이르기를 바라노라."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망명생활을 하던 독일 시인 브레히트는 소동파의 이 시를 읽고 '아들의 탄생에 즈음하여'라는 시를 지었다. 그리고 부제를 '소동파에게'라고 붙였다.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는/ 자식이 총명하기를 바란다/ 나는 총명으로/ 일생을 망쳤으니/ 이제 나는 오직 바랄 뿐이다/ 자식이 무식하고 사고하기 싫어하며/ 자라 주기를/ 그렇게 하면 자식은 편안하게 살게 될 것이다/ 내각의 각료로서"
영남대 독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