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시론] 한여름 밤에 만나는 고복수, 한대수, 소동파, 브레히트 /정지창

입신양명에만 눈먼 높은 양반들 보면 내 자식들에게 출세하라 못하겠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30 21:12:16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연일 폭염에 시달리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진다. 책 읽는 것도, 영화 보는 것도 귀찮고 어쩌다 신문을 들여다보면 괜히 짜증부터 난다. "자고 나도 사막 길 꿈속에도 사막 길/ 사막은 영원한 길 고달픈 나그네 길/ 낙타 등에 꿈을 싣고 사막을 걸어가면/ 황혼의 지평선에 석양도 애달파라" 고복수의 고졸한 옛노래 '사막의 한'이 그나마 정감있게 다가온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을 걷는 듯한 막막함과 절망감. 나는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자신을 돌아보며 무력감과 박탈감에 잠 못 이루는 서민들의 여름밤은 깊어간다.

솔직히 말해 서민들은 누가 장관이 되든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신문 방송에서 얼굴 사진과 함께 내보내는 고향과 출신학교, 외유내강 아니면 두주불사, 꼼꼼한 일처리와 불도저식 업무추진력 따위의 상투적인 인물 소개를 보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겠거니,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사청문회가 생중계되고 높은 양반들의 온갖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서민들의 짜증과 울화증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기 시작했다.

아, 민주주의는 우리가 피땀으로 되찾은 소중한 가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유능한 인재'들을 괴롭히고 힘없는 서민을 짜증 나게 하는 제도인가! 일 잘하는 유능한 인재면 됐지, 장관과 국세청장이 꼭 성인군자처럼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지난 대선 때부터 많이 듣던 소리다. 그런데 서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유능한 인재'들은 하나같이 법을 어기면서 위장전입을 하고 부동산 투기를 일삼으며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데도 아무런 처벌이나 불이익도 받지 않고 출세가도를 달리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정권 때는 같은 이유로 숱한 유능한 인재들을 낙마시키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서 출세하려면 서울 일류대학을 나오되 군대는 가지 않고 외국유학을 다녀오든가 고시에 합격하고 병역을 면제받아야 한다. 가급적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에 소질이 있는 여자와 결혼하고, 자녀는 일찌감치 미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한다. 정치판에 뛰어들면 줄이 긴 곳을 골라 서고 고향 선후배나 동창 인맥을 활용하여 가족을 위장취업시키든가 선거자금을 후원받는다.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자들은 '친북좌파'나 '노빠'로 몰아 임기 중에라도 내쫓는다. 혹시 이런 것이 인사청문회에 나온 '일 잘하는 유능한 인재'들의 능력은 아닐까?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에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하 나는 살겠네 태양만 비친다면 /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한대수의 텁텁한 목소리와 소박한 하모니카 소리에선 대한민국 엘리트의 출세욕을 벗어던진 자유인의 체취가 느껴진다. 서울 생활에 부대끼다가 모처럼 부산역에 내렸을 때 이마를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갯냄새 비슷한 느낌이랄까.

따지고 보면 출세나 입신양명이 무엇이란 말인가. 기껏해야 몇 년밖에 누리지 못하는 권력의 유혹이 그처럼 달콤하단 말인가. 더구나 자칫 정치판에 휩쓸려 들었다가 언제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도 일단 자리에서 물러나면 검찰과 언론의 무자비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던가. 그러니 자식에게는 출세할 생각은 접고 제 한 몸 편안하게 일생을 지내라고 당부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난세에는 욕심을 버리고 명철보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옛날 선비들은 가르쳤다. 북송의 대시인 소동파는 자식이 태어나자 장난 삼아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한다. "남들은 다 자식이 총명하길 바라지만/ 나는 총명으로 일생을 망쳤으니/ 다만 아이가 어리석고 미련하여/ 재난 없이 공경(公卿)에 이르기를 바라노라."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망명생활을 하던 독일 시인 브레히트는 소동파의 이 시를 읽고 '아들의 탄생에 즈음하여'라는 시를 지었다. 그리고 부제를 '소동파에게'라고 붙였다.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는/ 자식이 총명하기를 바란다/ 나는 총명으로/ 일생을 망쳤으니/ 이제 나는 오직 바랄 뿐이다/ 자식이 무식하고 사고하기 싫어하며/ 자라 주기를/ 그렇게 하면 자식은 편안하게 살게 될 것이다/ 내각의 각료로서"

영남대 독문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울산, 경남 대체로 맑고 포근… 낮 최고기온 부산 17도
  2. 2국민의힘, 주말 이후 대선 모드…김문수·홍준표 등 출마 선언 이어질 듯
  3. 3토허제 시행에도 강남3구·용산·성동 아파트값 고공행진
  4. 4尹정부 경기지수 ‘최저치’로 마침표…계엄 후 더 추락
  5. 5홍준표 “25번째 이사 …마지막 꿈 향해 상경”
  6. 6경북산불 폐기물 비용만 "1500억 이상일 듯"
  7. 7尹 정부 대통령기록물 이관작업 내주 본격화
  8. 8영끌 대신 살 아파트 지분투자… ‘한국형리츠’ 제도화 시동
  9. 9尹정부 내내 추락한 경기지수, '임기 중 최저치'로 마침표(종합)
  10. 10뉴욕타임스 “지난 4개월간 한국 민주주의 원상 회복력 입증했다”
  1. 1국민의힘, 주말 이후 대선 모드…김문수·홍준표 등 출마 선언 이어질 듯
  2. 2홍준표 “25번째 이사 …마지막 꿈 향해 상경”
  3. 3尹 정부 대통령기록물 이관작업 내주 본격화
  4. 4[속보] 김두관, 7일 대선 출사표…민주당 첫 주자
  5. 5개인 경호 외 대통령 예우 박탈, 한남동 관저서도 즉시 퇴거해야(종합)
  6. 6이재명 대세론 속 ‘장미 대선’ 레이스 점화(종합)
  7. 7대통령 윤석열 파면(종합)
  8. 8자충수로 단명한 尹 ‘1000일 정부’
  9. 912·3 비상계엄, 요건 모두 위반…尹 제기 ‘절차 문제’ 모두 불인정
  10. 10尹 “기대 부응못해 죄송…국민 위해 기도할 것”(종합)
  1. 1토허제 시행에도 강남3구·용산·성동 아파트값 고공행진
  2. 2尹정부 경기지수 ‘최저치’로 마침표…계엄 후 더 추락
  3. 3영끌 대신 살 아파트 지분투자… ‘한국형리츠’ 제도화 시동
  4. 4尹정부 내내 추락한 경기지수, '임기 중 최저치'로 마침표(종합)
  5. 5정부, 지자체가 청년·고령자 등 계층 특성 맞는 주택 건설 때 80% 지원
  6. 6키움증권, 이틀 연속 초유의 주문처리 시스템 ‘먹통’
  7. 7경제계 “이제 조속한 국정 정상화로 경제살리기 총력을”
  8. 8"주식 대주주 1인당 양도차익 29억원…정부는 감세 혜택만"
  9. 9주유소 기름값 9주 연속↓…하락폭은 눈에 띄게 축소
  10. 10트럼프 ‘전세계 10% 기본관세’ 발효…상호관세 9일부터, 韓 25%
  1. 1부산, 울산, 경남 대체로 맑고 포근… 낮 최고기온 부산 17도
  2. 2경북산불 폐기물 비용만 "1500억 이상일 듯"
  3. 3뉴욕타임스 “지난 4개월간 한국 민주주의 원상 회복력 입증했다”
  4. 4조기 대선으로 초중고, 방학 연기 등 학사일정 조정 불가피
  5. 5부산시 산하 17개 공공기관 320명 신규채용
  6. 6‘코인 투자하면 50% 이자 지급’ 사기로 29억 가로챈 30대 실형
  7. 7“너무 당연한 결과”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시민 희비교차
  8. 8[속보] 문형배 “탄핵 심판절차 원만히 진행…언론·경찰에 감사”
  9. 9“자가용 억제·대중교통 유도, 싱가포르 정책 참고하자”
  10. 10부산서 유류탱크 보수하던 작업자 1명 사망
  1. 1사직구장 재건축, 중앙투자심사 반려 ‘제동’
  2. 2NC, 롯데와 한솥밥 먹나?…사직구장 임시 사용 검토
  3. 3U-17 축구대표팀, 23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 도전
  4. 4박정은 감독 “BNK, 부산의 자랑이 되길” MVP 안혜지 “우승 맛 보니 한 번 더 욕심”
  5. 5롯데, 적과의 동침…NC, 사직구장에 둥지 튼다
  6. 6유격수 구인난 롯데, 경쟁체제 희망
  7. 7롯데 반즈, 사직 징크스?…폭삭 무너졌수다
  8. 8KCC 홈경기 8연패 탈출…4일 삼성과 마지막 홈전
  9. 9[뭐라노] 사직구장 재건축 '제동'
  10. 10레이예스마저 깼다…"롯데, 돌아왔구나!"
다시 열린 트럼프 시대
충성파로 내각 채우고 입법부까지 장악…트럼프 폭주 예고
다시 열린 트럼프 시대
美공장 지어 무역장벽 우회…‘미국통’ 등용 네트워킹 강화도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市 노동안전보건센터, 조속한 설립 필요하다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개발의 시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
우리에게 절실한 성장 마인드셋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현대과학이 만든 에너지 화수분
제로 인공지능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산시교육감 재선거 사전투표소에서
시민은 ‘청년이 돌아오는 부산’을 원한다
기고 [전체보기]
UN 제5사무국 유치, 글로벌허브도시 향한 첩경
에어부산 분리매각만이 합리적 해법인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기관장 잔치’된 체전 폐회식…선수가 주역인 축제 만들자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부산은 왜 망해가고 있을까
이형(고종), 이승만, 박정희, 윤석열 - 그들의 계엄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계와 통하는 힙한 판소리
조선시대 조상들의 고독 대처법
김창욱의 스포츠 탐색 [전체보기]
골프 vs 파크골프, 당신의 선택은?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좋은’ 일자리 지키기, 중요한 이유
북극항로의 시급성과 중요성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
도청도설 [전체보기]
철도 지하화
탄핵심판 선고 생중계
메디칼럼 [전체보기]
산재보험, 신청을 늦게 하는 이유
디지털 헬스케어와 미래의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금정산성막걸리와 겨울 안주
사하구 노포 맛집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 키우기 제5원칙, 사회적 소통
뇌력 키우기 4원칙 ‘잘먹기’
사설 [전체보기]
민주주의 일상 회복…공동체 분열 극복하자
트럼프 상호관세 직격탄, 리더십 부재 속 더 큰 충격
세상읽기 [전체보기]
위기의 대한민국과 다시 읽는 ‘공화주의’(共和主義)
건설 현장의 위험, 호흡기 질환과 직업성 암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전쟁과 장터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양질의 지속 가능한 건강보장을 위한 개혁 방안
인구 위기 본질과 노인 연령의 합리적 조정 방안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무주공해(無主空海)
트럼프 2.0 그리고 대한민국 해양정책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트럼프의 속마음 읽기
고환율의 명령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주민투표로 결정되는 부산·경남행정통합
수능 폐지를 위한 10년 교육 실험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의 8대 명당, 김극뉴의 묘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의 생가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트럼프의 ‘윤석열 구하기’ 망상
문민을 국방부 장관으로!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특권의식
유효기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모리스 라벨
겨울 나그네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시인 권구현의 ‘금강산 풍경’
‘자연’ 임신의 검정 강아지
CEO 칼럼 [전체보기]
브이드림의 ‘감사하는 조직문화’
중소기업, 해외시장으로 눈 돌려야

Error loading images. One or more images were not found.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