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제 선생의 바람대로 조촐한 장례절차에 따라 경기도 용인의 천주교 묘지에 묻혔다. 어찌보면 갑작스럽다고 할 그의 부재 앞에 선생의 빈자리가 더욱 또렷해보인다. 동료 후배 문인들이 기리는 추도사가 굳이 아니더라도 선생이 남긴 작품 하나 하나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거울이었다.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아온 '국민작가'란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리라.
병상에서도 마지막까지 그는 문학의 끈을 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문학잡지의 청년작가상 심사를 위해 작품을 읽고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숨지기 전날 이메일로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한다. 병의 위중함을 모르고 잡지사가 심사위원으로 모셨을리 없기에 선생의 병환이 주위의 생각과는 달리 며칠 사이에 급속히 악화됐음을 짐작하게 되면서 문단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게 돼 숙연해진다.
'마흔의 늦깎이 주부등단'이 늘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지금이야 쉰, 예순의 나이를 넘긴 여성들도 등단하는 게 흔한 일이지만 선생이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1970년에만 해도 여성의 사회 활동은 극히 드물었다. 선생은 그런 면에서도 독보적 존재였다. 이후 우리 문단에 그의 활동에 자극받아 늦깎이 여성 문인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크게 보면 우리 사회 산업화 추세에 따른 현상이지만 문학계에서만큼은 선생의 존재가 향도자 역할을 수행했다고 하겠다.
선생은 분단이 안긴 상처와 여성억압 구조 등을 쉽고 편안한 문체로 우리에게 소곤소곤 들여줘 책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 작가였다. '엄마의 말뚝'을 비롯한 숱한 화제작들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의 시각을 견지했다. 이런 인간애가 1990년대 들어 동심의 세계로 관심을 확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 우리들이 잊고 있는 '할머니 이야기꾼'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어느 여성 소설가보다 동화를 많이 지은 작가였다.
1999년 발표한 '자전거도둑'은 기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우리 사회 기성세대의 부도덕성과 물질만능을 16세 수남이란 아이를 통해 그렸다. 시대배경은 1970년대로 농촌 출신의 수남이가 서울의 전기용품도매상에 점원으로 일하며 진학의 꿈을 키워간다. 어느날 수남이가 자전거를 타고 수금을 가다 승용차에 부딪히면서 문제가 일어난다. 차주는 수리비를 내라며 자전거 바퀴에 체인을 감아버리고 수남이는 몰래 자전거를 들고 상점으로 달아난다. 상점 주인 할아범은 수금한 돈이 축나지 않은 것만 생각하고 잘했다고 두둔한다. 어린 수남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만다.
우리의 옛날 생활상을 생생하게 복원해 마치 외할머니가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동화집 '나 어릴 적에'도 있다. 또 우리 사회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다문화가정을 다룬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도 인기를 끈 작품이다. 엄마를 여의고 미국으로 이민간 아버지, 필리핀인 새엄마와 이복동생들과의 사이에서 복동이란 아이가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쳐가는 과정을 그려 지금 우리 사회 문제를 동심의 눈높이에서 살폈다.
노작가가 말년에 동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만큼 우리 어린이들이 놓인 현실에 대한 염려 때문이지 않을까. 불과 20~30년 전과 달리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할머니의 따스한 정을 모르고 자라는 게 우리 아이들이다. 박완서 선생의 원려를 읽게 된다. 그가 우리나라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20년간 펼친 활동 이력만 봐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며칠 후면 우리의 최대 명절 설이다. '까치 설날' '우리 설날'을 손꼽던 설렌 동심도 언제부터가 사라져버렸다. 선생이 돌아가신 시점이 우리에게 동화의 가치를 새로 인식시키고 있다. 문학인들은 앞으로 그들 나름대로 선생을 기리는 일을 할 것이다. 선생에 글빚이 있는 우리네는 자녀들과 함께 동화책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게 선생이 바라는 따뜻한 세상을 앞당기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