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내 탓이오"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 때라고 말했지만 요즘도 자동차 뒷유리 같은 곳에 "내 탓이오"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분들을 간혹 본다. 나는 이 운동의 근본 취지나 그분들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하도 남의 탓만 하면서 자기 탓은 모르는 이들이 많다 보니 그런 운동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그 글귀를 볼 때마다 마음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푼어치의 잘못을 한 이가 "내 탓이오" 하고 반성할 때, 정작 아흔아홉 푼어치의 잘못을 저지른 이가 "그래, 네 탓이다" 하면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더 많은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옳은가 말이다.
얼마 전 부산에 제법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말이 몇 년 만에 내린 폭설이지 다른 지역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은 강설량에 부산의 교통이 온통 마비되고 말았다는 보도를 보니 좀 의아하다. 부산시나 행정안전부는 그런 정도의 눈에도 전혀 아무런 대비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인가? 부산의 경우는 조금 불편한 정도였다고 넘어갈 수 있다. 강원도에서는 며칠씩이나 마을이 고립되고 도시의 기능이 온통 멈춰 버렸다고 한다. 물론 눈이 내리고 말고를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정부가 폭설에는 어떻게 대처한다는 제대로 된 매뉴얼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여름에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어도 정부는 언제나 몇 년 만의 폭우니 몇 십년 만의 태풍이니 하는 말로 변명에만 급급해 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부라면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 때는 이러저러하게 대처한다는 매뉴얼을 가지고 있어야 옳다. 그런데도 정부는 천재지변만 탓할 뿐 누구 한 사람 "내 탓이오" 하는 이가 없으니 참으로 갑갑한 일이다.
지난해부터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 수가 330만 마리가 넘고 피해 규모가 3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높은 분들은 그 책임을 농민들에게 돌릴 뿐이다. 심지어 대통령은 구제역 괴담을 누가 퍼뜨렸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부가 하는 일이 시원치 않으면 국민들이 의문을 가지고 불신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투명하게 모든 사정을 밝히면 될 텐데, 거꾸로 유언비어니 괴담이니 무슨 세력의 음해니 하면서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천안함 사태 때도 연평도 사건 때도 정부와 군의 높은 양반들이 TV에 나와 국민들에게 호통치면서 훈계하는 모습은 보았지만 누구로부터도 내 탓이라는 반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서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반드시 이명박 정부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와서 그러한 모습이 더욱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청년 실업자가 백만 명을 넘는다는데 어떤 자리에서 대통령은 구직자들이 눈높이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청년 실업에 정부는 아무런 탓도 없고 단지 실업자들의 눈이 너무 높은 탓이라는 이야기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은 자신도 노점상을 했다거나 자신도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는 한다.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통령과 정부에 바라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책이다. 대통령의 노점상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을 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을 바라는 것이다.
자기 책임을 모르는 정부는 당연히 무엇이 문제인지 성찰할 수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대책을 내놓을 수도 없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 부총리를 지냈던 양반이, 6·25때부터 누적된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느냐며 억울함을 하소연한 적이 있다. 외환위기의 탓이 자신이나 김영삼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부총리라는 자리는 바로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무책임한 장관을 앉히니 결국 김영삼 정부가 외환위기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심각한 재난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제발 이명박 정부가 그런 전철을 밟지는 말았으면 싶다. 물론 대통령이나 그 주변의 높은 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같은 필부필녀도 좀 마음놓고 살고 싶어서이다.
참사회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