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국민국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국적과 체류자격에 따라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범위를 뚜렷이 제한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사실에 강한 의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이주민 유입의 역사 20여년 동안 어느덧 훌쩍 커버린 이주아동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다.
국경을 넘는 이주는 구조적이고 강제적인 요인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은근하고, 복잡한 형태를 띠고 드러나기 때문에 이주는 순전히 이주자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본인이 선택해서 '이주' 아동이 되거나, '미등록 체류' 아동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훨씬 분명하다. 국적과 체류자격에 따른 권리의 제한은 이 아이들에게도 별반 예외가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아무리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았더라도,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 아닌 이상 영주권이나 국적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한국에서는 이런 권리의 제한이 더욱 뚜렷하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아동의 교육권 실태조사'는 미등록 체류아동이 여전히 학교에 다니기 힘든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학교 측에서 비자를 확인하기도 하고, 학교 사정을 들며 입학이나 전학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단속의 두려움이 아이들을 학교에서 밀어내기도 한다. 법무부의 집중단속기간이면 부모들은 강제추방의 두려움 때문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다. 어차피 아이를 학교에 보내도 공식적인 교육경력으로 인정되지도 않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말 이 실태조사에 근거해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고, 올해 6월 법무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주아동의 재학률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교육공무원 등이 미등록체류자를 발견할 때 출입국 기관에 통보해야 할 의무를 유보 또는 면제하겠다는 등이 그것이었다. 환영받아 마땅한 결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결정이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데 그다지 커다란 '진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은 20년 전인 1991년에 이미 유엔의 '아동에 관한 권리협약'에 가입·비준했다. 협약의 내용이 지켜지지 않는데 대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한국정부에 권고한 것이 2003년이었다. 그 후 한국정부는 국내 거주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만 있으면 아이들이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2006년 8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미등록 체류 부모에게 합법적 체류를 허용하는 한시적 사면조치가 시행되기도 했었다. 이주아동의 교육권에 관심을 갖고 있던 많은 이들은 이 한시적 사면조치가 적어도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동들의 보호자에 대해서는 장기 체류를 인정하는 조치로 발전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즈음 정권을 이양 받은 현 정부는 그 기간연장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리고 2010년 실태조사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었다.
정부부처들이 흔히 하는 변명은 다른 선진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민에 대한 폐쇄성에서 한국과 쌍벽을 이루는 일본조차도 '재류특별허가'라는 제도를 활용해 학교에 다니는 나이가 된 자녀가 있는 미등록체류자 가족에게는 영주를 허용하고 있다. 매년 이 제도를 통해 사면되는 미등록 체류자의 수는 만 명을 훌쩍 넘는다. 이미 사회화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일본에서 보낸 아이들은 부모의 나라로 돌아가도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그에 비하면 법무부의 이번 결정은 공부가 하고 싶어 학교에 온 미등록체류자 아동을 선생님이 출입국 기관에 신고하지 않아도 봐 주겠다는 정도인 것이다.
법무부와 교육과학기술부의 이번 결정이 국제협약을 비준하고도 지키지 않는다는 국내외의 지탄에 대한 생색내기가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관련법 개정을 고려하겠다는 법무부의 행보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빼앗겨 버린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가 그 행보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