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능일이다. 해마다 오는 날이건만 딸아이가 시험을 치르는 날이라 여느 해와는 느낌이 다르다. 기나긴 입시터널을 빠져나오는 날이니 일단 축하부터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아울러 오늘은 입시생을 둔 학부모 또한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하나는 내려놓은 기분일 것이다.
그간 아이의 입시과정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레 놀랐다. 익히 이야기는 들었지만 수천 가지에 달한다는 전형방법에 직접 맞닥뜨려서는 아예 기가 질렸다. 솔직히 그 많은 전형들을 다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무책임한 부모라고 욕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고 애써 외면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사교육과의 전쟁이었다. 가급적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다는 '어쭙잖은' 의지는 아이 엄마의 현실론에 묻혀 서서히 무너져갔다. 초기에는 나름대로 언쟁도 벌였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내 논리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상의도 없이 비싼 학원에 척척 등록하는 아이 엄마를 크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져 갔다.
결국 사교육 반대라는 뚜렷한 논리를 내세워 나름대로 다른 교육환경을 모색하지도, 아주 비싼 과외를 시켜주지도 못한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아빠가 돼 버렸다. 대한민국 평균적인 상당수 남편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것으로 굳이 위안을 삼고 면피해보려 하지만 씁쓸한 마음 한 구석은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시쳇말로 대한민국의 입달린 사람이라면 저마다 한마디씩 할 정도라는 게 대학입시와 사교육 문제다. 입시정책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 문제로 시끄러울 때마다 핏대를 세우며 흥분해보지만 좀체 오르지 않는 아이들의 성적표에 약해지는 게 학부모다.
급기야는 공익광고에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라는 카피까지 등장했다. 오늘의 세태를 정확히 꼬집은 촌철살인이 돋보이지만 학부모와 부모의 간극은 그리 간단히 메워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대선이 코앞이다. 이번에도 각 후보들은 어김없이 백년대계를 외치며 교육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후보들 모두 사교육 축소와 공교육 정상화라는 큰 틀에 별 차이가 없다. 미로찾기 같이 복잡한 대입 전형을 단순화하고 특목고를 개선하겠다는 내용도 보인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대입정책이 또 한차례 소용돌이 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나긴 대입정책 변화사를 돌아보건대 공고한 사교육의 뿌리가 뽑힐 것 같진 않다.
대입정책과 사교육은 이미 그 자체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여러 가지 병폐의 결과이자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뿌리 깊은 학벌주의, 청년실업,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등이 대학입시와 얽히고설켜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모를 지경이 돼버렸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이런 제도적·외부적 요인에 대한 수술없이 전형을 줄이고, 특목고를 개선하고, 학원을 규제하는 등의 미봉책으로는 5년 뒤 또 다른 비슷한 공약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여전히 힘든 문제지만 아이들에게 '부모'가 될 것인지 '학부모'가 될 것인지다. 이 또한 앞서 언급한 구조적인 병폐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수능을 앞둔 자녀를 위해 유명 기도처를 찾거나 수능장 앞에서 종일 두 손을 모으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그 '부모'의 마음 한편에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되레 지나친 경쟁으로 내모는 '학부모'의 욕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학부모'의 마음을 버리기란 쉽지않은 일이다. 나부터 그래왔다. 자칫 무책임한 부모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수십년 세월이 지나도 더욱 기승을 부리는 사교육 문제가 모두 제도 탓이기만 할까. '학부모'의 욕심과 실타래처럼 뒤얽힌 제도의 문제를 함께 풀 솔로몬의 지혜가 그래서 필요하다.
편집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