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의 단편소설 '깨끗한 몸'에선 어려서 여탕에 갔던 작가의 고통스러운 체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서울 강남의 초호화 대형 사우나에 가게 된 주인공은 한국전쟁 직후였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기억에 잠기는 것. 그는 추석 전날 홀몸으로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끌려간다. 온갖 수모를 감내하며 어머니는 아들의 살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때를 박박 밀어낸다. 소설 속의 홀어미는 어쩌면 지난 세월 우리네 어머니의 보편적인 모습이었을 터.

선악과를 몰래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벗은 몸을 무화과 잎으로 가린 이후 남성들에게 여성의 누드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는 "게르만족들은 강에서 혼욕하고 의복은 거의 벌거벗었다"고 흉을 봤지만 제정 시대의 로마 목욕장도 남녀공용이 일반화됐다고. 기독교 전래 이후엔 남녀 혼욕이 금지됐을 뿐 아니라 수도자들은 목욕을 하지 않는 게 상례. 평생 목욕하지 않았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의 어머니 아그네스는 죽어 성녀의 반열에 올랐다.

일본과 독일엔 아직 남녀 혼탕이 남아 있다. 일본의 료칸은 남탕과 여탕의 위치를 매일 바꾸는 곳이 많기 때문에 방심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독일 바덴바덴의 프리드리히 온천과 카라칼라 온천 역시 남녀 혼탕이다. 벗고 있어도 되지만 수건으로 몸을 가려도 뭐랄 사람은 없다고.

우리나라라고 혼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서기 1123년 고려에 온 송의 사신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의 한 구절. '고려인은 아침에 일어나 목욕을 한 후 집을 나서며 여름엔 두 번씩 목욕한다. 흐르는 시냇물에 모여 남녀 구별 없이 모두 옷을 언덕에 놓고 목욕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탕은 1924년 평양에 등장했고 이듬해엔 서울에도 생긴다. 2000년 1만여 개였던 대중탕은 요즘 8000여 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대중탕에선 만 5세 이상의 남아는 여탕에 들어갈 수 없다. 1960년대 공중위생관리법이 제정됐을 땐 만 7세였지만 2003년 만 5세로 낮췄다. 그래도 항의하는 손님들의 등쌀에 목욕업중앙회가 여탕 입욕 금지연령을 더 낮춰달라고 건의했다. 복지부는 만 4세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데려갈 남자 어른이 없는 가정을 위한 별도 조치는 마련돼야 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