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이동에 대한 기념비적 탐구서인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의 요지는 유럽인이 세계를 제패한 것은 인종적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 차이 때문이라는 것. 땅이 비옥한 반달 지역에서 4대문명이 발생한 후 농업과 목축 기술이 비슷한 위도로 전파되면서 동서 횡축 상에 위치한 유럽이 문명 전파의 혜택을 입었다는 것이다. 

유럽이 대항해 시대 이후 세계를 제패한 건 총과 쇠와 병원균 때문이었다는 거다. 1532년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총기로 무장한 168명의 병력으로 8만 군대를 가진 잉카를 멸망시킨다. 당시 아메리카엔 철기문명 역시 없었다. 여기에다 농경과 목축에 종사하며 일찍부터 각종 세균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던 유럽인들이 청정지역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병원균을 옮겨 떼죽음을 시켰다.

인류의 역사는 병원균과의 투쟁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서양 할 것 없이 중세인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페스트, 천연두, 콜레라 등은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할 때까지 끊임없이 인류를 괴롭혔다. 지금도 인류는 인플루엔자, 에이즈 같은 병원균에 속수무책이다. 2002년에도 '사스(급성 호흡기 증후군)' 때문에 전 세계가 전전긍긍했던 터. 1995년작 미국 영화 '아웃 브레이크'나 재작년 나온 한국영화 '연가시'처럼 '인간과 바이러스의 사투'가 영화의 단골소재가 된 것도 그 때문.

지금 서아프리카발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1967년 독일의 미생물학자 마르부르크가 콩고의 에볼라강에서 발견한 이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90%에 이르는데도 아직 치료법이 없다. 3주간의 잠복기 후에 고열, 오한, 근육통 등 일반적 감기 증상을 보이다가 혼수상태나 뇌출혈을 일으킨다고.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기나, 나이지리아 등에선 지난 3월 이래 729명이 사망했다. 이미 해당국 정부의 통제 수준을 넘어선 지경.

우리 외교부도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에 '특별여행경보'를 발령해 국민들의 입국 자제를 권고했다. 상황에 따라선 전면 입국금지를 시행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덕성여대와 유엔 여성기구(UN Women)가 4일 개최하는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도 당장 차질이 생겼다. 나이지리아, 알제리, 르완다, 가나 등 아프리카 11개국에서도 수십명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에볼라 확산 우려가 제기되면서 행사 개최가 불투명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