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늙다리(?) 총각 처녀들이 적잖다. 서른 중반의 그들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글쎄, 마땅한 사람도 없고, 모아 둔 돈도 없어서…"하고 말끝을 흐리기 일쑤다. 용감하게 결혼에 골인한 친구들도 좀체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하루라도 일찍 낳아 길러야 나중에 고생이 덜하지 않겠느냐고 한마디하면 "어른들은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지만…"하고는 화제를 돌린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를 빤히 쳐다본다. 정말 까닭을 몰라 그런 눈치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

2030세대의 특징을 '쿨'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대체로 정치에 무관심하며 전통적 결혼 생활에 애달캐달하지 않는다. 연애는 하지만 마음 맞는 동성 친구와의 만남이 더 편하다. 주중엔 혼자 맥주를 마시며 게임하거나 외국 드라마를 본다. 주말에는 친구와 영화나 뮤지컬을 보고 수입맥주집이나 일본식 주점에서 가볍게 한 잔 한다. 값이 싸면서도 디자인이 세련된 인테리어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원룸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여성들도 많다. 일년에 한 번쯤 외국으로 배낭여행도 간다. 한마디로 '싱글 라이프'에 만족(?)하는 거다. 그래서 이들의 별칭이 '노마드(Nomad: 유목민)'가 아닌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으로 무장한 그들이다. 이런저런 정보 수집에 능하고 사리 판단도 빠른 편이다. 대학 시절 어학연수를 다녀와 외국어도 곧잘한다. 쉽게 감동하기보다는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한 세대다. 기성세대의 눈으로는 때론 영악하고 때론 패기 없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어찌 된 게 매가리도 없고…"하는 소리를 늘어놓는 거다. "어릴 때 너무 오냐, 오냐 키워서 자립심이 없다"는, 전형적인 '꼰대'식 멘트도 빠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그들의 삶을 피상적으로 관찰한 결과일 따름이다. 그들이라고 '싱글 라이프'가 달가울 리는 없을 게다. 아니, 그들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사는 세대도 없다. 중·고교 시절엔 좋은 대학 가야 한대서 '야자'에 과외까지 받으며 밤새워 공부했고, 대학 가선 스펙 쌓느라고 토익, 토플에 사회봉사 점수까지 땄던 그들이다. 그런데 정작 취직을 하려니 받아주는 데가 없다. 일껏 스펙을 쌓았지만 다른 경쟁자들도 마찬가지여서 눈에 띄지도 않는다. 기업의 면접관조차 "우리더러 이런 스펙 쌓으라면 죽었다 깨도 못할 거다"고 혼잣말을 한다지 않는가.

일자리가 없으니 인재가 의대로만 몰린다. 로스쿨 나와 변호사 돼도 별 게 없는 세상이다. 그러니 수백 대 일의 경쟁률에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느라 청춘을 낭비하지 않나. 어영부영 서른을 넘기면 기다리는 건 기껏 비정규직이거나 시간제 일자리다. 전셋집이라도 한 칸 있어야 시집 장가를 갈 게 아닌가. 애 낳으면 살인적(?)인 보육비는 또 어쩌고. 서울지역 월평균 육아 지출액이 118만 원이란 통계도 있다. 애들이 커가면서 감당해야 할 교육비 부담은? 그러니 결혼할 엄두도, 출산할 용기도 내지 못하는 거다. 결혼에 발목이 잡혀 연애가 몇 번 깨져 버리면 이성에 대한 욕망도 시들해질 밖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가 나온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문제는 2030세대의 문제가 고스란히 부모 세대의 부담으로 전이된다는 데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 하나를 낳아 대학 졸업 때까지 총 3억896만 원이 든다고 한다. 대학만 졸업시키면 끝나나? 취직이 안 되니 집에 눌어붙은 애들에게 용돈까지 쥐여줘야 한다. 결혼을 시키려면 집도 구해 줘야 한다. 알량한 퇴직금을 애들 밑에 다 날리면 빈털터리가 된다. 용돈 수준인 국민연금에 목을 매는 처지로 전락하는 거다. 늙마에 허리가 부서져라 손주까지 키워줘야 하는 건 부록이다.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면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어 경제 성장 침체라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는 건 상식이다. 노령세대를 부양할 젊은 인구가 줄면 당연히 복지 재정이 고갈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1000명당 8.6명으로 OECD 34개국 중 꼴찌였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최근 한국이 2030년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게 되면 노동 가능 인구 2.7명이 노령인구 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먼 미래가 아니다. 고작 15년 후의 이야기다. 이미 세대별 인구 구성비가 뒤바뀐 판이다. 다수를 점한 노령 인구가 보수정당에 몰표를 주는 바람에 자신들을 대변할 정권을 내세워 보지도 못한다. 그러니 정치에도 무관심해지는 게 아니겠는가. 하다 못해 지하철에선 자신들이 낸 돈으로 무료 승차한 어떤 노인들이 자리 양보 안 한다고 윽박지르니 앞세대에게도 냉소적이 되는 거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고 야단이다. 부동산 대출 요건을 완화하고 금리도 내렸다. 쉽게 말해 돈을 풀어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겠다는 거다. 글쎄, 부동산 수요가 가장 많은 계층인 젊은 세대가 결혼을 않는데 주택 경기가 얼마나 활성화될까. '집값 거품'을 국민에게 뒤집어 씌워 '폭탄 돌리기'를 하겠다는 게 아닌가. 결국 경기 활성화란 미명 아래 땅 가진 기업만, 가진 이들의 배만 불리겠다는 정책이 아닌가.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한국 노동시장의 중추인 2030세대를 위한 맞춤형 정책의 입안과 시행이다. 일자리를 늘리고 질을 높일 일이다. 싼 값의 임대주택을 대폭 늘릴 일이다. 보육시설을 확대할 일이다. 고비용 교육시스템도 고쳐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 번 돈을 움켜만 쥐지 말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데, 임금을 올리는 데 풀어야 한다. 그건 지출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2030세대의 방황은 곧바로 부모 세대의 고통으로 연장된다. 장기적으로는 집단 빈곤의 씨앗이 된다. 지금 대처하지 않으면 국민 모두가 고통받는 시대가 곧 닥쳐온다.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삶'이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개발(?)한 것은 자신들의 고통에 무심한 기성세대에 대한 복수인지도 모른다. 당신들이 우리를 챙겨주지 않는데 왜 우리가 당신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느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