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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복원과 은폐 사이의 베를린 훔볼트포럼

파란만장 역사의 건축물, 동독 ‘공화국 궁전’ 철거

식민주의 반성 공간 재건…동독 유산·추억은 사라져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9-14 19:28:00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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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현재 유럽의 정치와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다, 이 활기찬 도시의 많은 볼거리 중에서도, 특히 통일 수도의 새 얼굴이라 할 만한 대표적 건축물이 있다. 베를린 최중심부에 새로이 등장한 훔볼트포럼이다. 이 건축물은 역사박물관 등 특정 기능으로 한정하기에는 그 상징성이 너무 크고 문제적이다. 이곳에 수백 년 간 터를 잡고 있다가 완전히 파괴된 후 70년 만에 원래와 비슷한 모습으로 부활한 이 불사조는 기관의 총책임자 하르트무트 도걸로의 표현대로 ‘기억의 건축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듯싶다.

18세기 초 궁정 건축가 안드레아스 슐뤼터가 이곳에 15세기 중엽부터 놓여있던 호엔촐런 가문의 성을 확장하여 북유럽 바로크 건축의 백미인 베를린성의 원형을 구축했다. 이 도시 안의 왕성은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제국, 바이마르공화국, 나치 시대를 거치며 잘 버티다 1945년 연합국의 공습으로 80%가량 파괴되었고 결국 1950년 가을에 이르러 독일민주주의공화국(동독) 정부가 다이너마이트로 완전히 폭파해버렸다. 베를린성이 사라진 자리는 수십 년간 방치되다가 1976년 동독 인민의회 본회의장을 갖춘 ‘공화국 궁전’이 들어섰다. 그리고 통일 후 이 건물은 많은 논란 끝에 2008년 철거되고 그 자리에 궁전 아닌 궁전이 재건되어 2021년 9월 개관했다.

베를린성은 도시공간의 중핵이었다. 베를린의 샹젤리제라 할 만한 중심가로인 운터덴린덴의 동쪽 끝의 교차로에 위치했으며 주변에는 교회와 대학 오페라하우스 역사박물관 극장 등이 늘어서 있고 길 건너 바로 맞은편에는 다섯 개의 세계적인 박물관들이 어우러진 ‘박물관 섬’도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베를린은 잃어버린 중심을,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되찾은 것일까? 21세기에 부활한 바로크 궁전은 더는 왕이나 황제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열린 공간으로서 분열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금 잇고자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독일 민족과 베를린의 유구한 문화적 유산을 복원하는 동시에 불미스러웠던 과거를 뛰어넘어 좀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대의를 표방한다. 이러한 대의는 건축물의 외형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바 전체적으로 엷은 황색을 띤 평방형 건물의 세 앞면은 옛 베를린성의 고색창연한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한 반면에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강에 면한 동쪽 면은 장식 없는 평면의 격자 구조가 지극히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훔볼트포럼은 이름이 표방하듯이 언어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 지리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 형제의 정신을 이어 전 세계를 잇는 ‘세계박물관’을 지향한다. 특히 야심적인 기획은 제국주의 시절 유럽이 자행했던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나치 과거에 대한 반성에 그치지 않고 유럽 전체의 과거청산을 독일이 주도하겠다는 포부가 역력하다. 베를린이 자랑하는 인류학박물관 및 아시아예술박물관과 더불어 훔볼트대학의 유서 깊은 소장품들까지 들여와 전시와 연구, 소통의 지구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미 국내 언론도 조명했듯이 중국관과 일본관에 비해 지나치게 협소한 한국관의 모습을 보면 과연 식민지의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도 제국주의 과거를 반성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인정해달라고 그들에게 촉구하는 행위가 오히려 제국-식민지의 위계를 재연하는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사회주의 동독 정부에 의한 베를린성 파괴는 분명히 지탄받을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기왕에 세워진 건물을 또다시 파괴한 것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표면적인 이유는 동독 난방시스템의 허술함으로 인해 쌓인 발암물질인 석면 때문이라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독의 공화국 궁전은 흰색 대리석과 갈색 유리창의 외벽이 돋보이는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주변과 썩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동베를린 시민에게 사회주의 체제의 억압을 상징하는 곳은 아니었다. 개인적 추억이 담긴 건물의 파괴는 그들이 결코 동등한 국민일 수 없다는 자괴감을 낳기에 충분했다. 이어진 반대 청원을 짓누르고 솟아오른 불사조 건축물은 복원과 은폐, 비판적 성찰과 의도적 망각 사이에 우뚝 서 있다. 현재 그곳에는 공화국 궁전의 일부 흔적만이 보존되어 있다.

이 도시의 반쪽을 가득 메웠던 사회주의의 유산은 다 어디로 갔는가? 노골적인 독재체제는 나빴지만 주민들의 사회적 이상마저 불미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한반도에서도 (흡수)통일이 된다면 혹여 우리도 저 북녘의 수도를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 할 만한 아름다운 고적(古蹟)도시로 재생할 것인가? 마치 두 세기에 걸친 반목의 역사는 꿈결이었던 것처럼.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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